서울의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경계선. 2월의 마지막 날에 일본의 대표 상사, 한국이토추를 방문했다. 유쾌하고 인기 많기로 소문난 하세가와 사장. 이날 계속해 들려온 외부 시위 확성기 소리에도 한국에 대한 그의 진심, 주재기간 경험한 한국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이토추 하세가와 코지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한국이토추 사장, ‘상사맨’ 하세가와 코지(長谷川 浩二)입니다. ‘상사맨’ 이라고 하면 한국에선 얼마 전 큰 인기가 있었던 ‘미생’이라는 드라마를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웃음).
학창시절에 해외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제조업 분야에서도 할 수 있었겠지만 역시 종합상사가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해 상사를 중심으로 취업준비를 했고, 1988년에 이토추 상사에 입사했습니다. 본사 근무에서는 화학품의 수출입 및 삼국 무역을 담당했습니다. 거래처는 중국, 한국, 대만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구미, 동유럽, 러시아 등 다방면에 걸쳤고, 해외 주재는 홍콩, 상하이에 이어 서울이 세 번째로, 2020년 5월에 부임해 약 3년간 주재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이토추는 화학품을 중심으로 에너지, 금속, 의류, 식품, 종이 펄프, 기계 등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한국이토추에서의 3년간 그 전체를 매니지먼트 하는 위치에서 여러 업계의 분과 만날 수 있어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 한국은 최근 ‘상사’라는 이름을 잘 쓰지 않는 것 같은데요. 일본과 한국의 상사문화에 차이 같은 것이 있을까요 -
한국에도 LX International, Samsung C&T, Posco International 등 훌륭한 실적을 올리고 있는 상사가 여러 개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상사’라는 단어는 잘 안 쓰는 것 같네요. 트레이드라는 비즈니스 모델로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일본 종합상사의 경우는 8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쳐 제조업의 해외 진출, 고객과의 직거래 증가로 '상사 불필요론, 상사 겨울시대'라 불릴 만큼 실적이 침체하면서 트레이드보다 사업투자에 주력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일본에서는 종합상사가 제일 먼저 나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한국 상사의 경우, 그룹 외 재벌과의 거래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LG계열 상사가 삼성 계열사와는 잘 거래하지 않는다는 거겠죠. 일본에는 이제 재벌이란 개념은 없어,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등은 같은 그룹사라도 자본관계는 없습니다. 그룹 내 거래는 물론 있지만, 이토추도 미쓰비시그룹, 미쓰이그룹, 스미토모그룹과의 거래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한국 상사와의 다른 점이라 할 수 있겠고, 일찍이 트레이드와 사업투자를 경영의 양 축으로 한 것이 일본 상사의 빠른 성장 배경이 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회사 소개도 조금 하자면, 이토추의 경우는 일찍이 우주 비즈니스를 내세워 1985년에 민간 기업으로서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통신 위성을 발사했습니다. 또 1998년에 편의점 3대 체인 중 하나인 ‘패밀리 마트’를 인수, 그 외 ‘이토추 테크노 솔루션즈’라고 하는 일본 유수의 시스템 회사도 산하에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다른 상사들도 각각의 특기 분야, 특징을 살려 우수한 기업들을 가지고 있는 데 한국의 상사와 다른 점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한국의 상사도 사업 투자에 적극적이기 때문에 점차 일본의 상사처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놀란 일본과의 차이점이 있었다면 -
최근에 느낀 건 물가 급등에 대한 국민 반응입니다. 부동산은 말할 것도 없지만, 지난 3년간 마트의 식재료, 식당에 밥값, 미용실 커트비 등, 많은 것들이 빠르게 올랐는데 그걸 국민이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일본은 디플레이션 시대가 길어 가격 인상에 대한 저항이 강합니다. 물론, 일본도 최근에 물가가 오르고 정재계가 함께 임금을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한국은 고가의 브랜드를 찾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지난 10년간 경제가 급성장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벤츠나 BMW의 판매량이 일본보다 훨씬 많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어떤 분에게 “한국에서는 차에서 내릴 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차를 고를 때는 '승차감'보다 '하차감'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새삼 일본과 다르단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한국 사람들이 주변 시선을 많이 의식하기 때문일 것 같은데요. 일본은 어떤가요 -
한국에서 행복의 가치가 경제적 성공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주위 시선을 신경 쓰는 것 아닐까요. 일본도 고도성장기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그런 경향이 있었습니다만, 버블 경제 붕괴 이후에는 자신감을 잃고 'No.1 보다 Only 1' 이라는, 자신이 느끼는 행복이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옛날처럼 경제적 성공을 쫓진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기본적으로 단일 민족, 같은 문화이기 때문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인식이 강하고 주위의 시선을 매우 신경 씁니다. 다만, 일본은 이른바 '메이와쿠 문화'라고 해서, 주변에 폐를 끼치면 안된다는 교육을 어릴 때부터 받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주변 시선에 신경 쓰는 부분이 한국과 반대일 수 있겠습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들어오면서 유럽과 미국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일본에서는 90%이상의 사람들이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습니다. 법적 구속도 전혀 없는데 말이죠. ‘동조압력(同調圧力)’을 느끼고, 주위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일본인의 특성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 일본과 다른 한국의 강점은 뭐라 생각하십니까. 한국 직원과 일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
속도감, 그리고 변화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일까요? 비즈니스, 사람, 조직 모두 기존의 것을 고집하지 않고 좋다고 생각하는 것,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한국의 특징은 일본의 가장 취약한 점이고, 지난 20년의 한일 경제성장의 차이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직원과 일하면서 느낀 차이점이라면, 글쎄요. 한국이토추는 한국인 사원이 약 40명 가까이 있는데 전원 일본어에 능통하고 모든 소통을 일어로 합니다. 베테랑도 많고, 일본식 근무방식을 모두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다만, 유교문화로 상하관계가 철저하면서도 최근 젊은 분들은 자기 주장을 정확히 표현하게 된 것 같고, 또 일본과는 달리, 회식 자리에서 여성 직원분들도 술을 잘 마십니다. 특히 상대에게 술을 마시도록 권하는 건 예전엔 일본도 그랬습니다만 한국에선 중장년 분들을 중심으로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 분들은 흔히 ‘in / out’의 구분이 있다고들 합니다. 즉, 국적은 관계없이, 마음으로 신뢰하고 ‘우리’라는 동지로 인정하면 평생 사이 좋게 지내고 무슨 일이 있으면 전력을 다해서 도와준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런 경향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한국과 일본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놀란 점이나 또는 참고할 만한 점이 있었다면 -
거래처가 대기업 중심이기 때문에 편중된 이해일 수도 있겠지만,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미국 스타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옛날 한국 기업은 연공서열, 탑다운(Top Down)의 하향식이었지만 최근에는 컴플라이언스(compliance)를 중시하고, 젊은 사람에게도 권한을 부여해 성공보수적인 기업이 많습니다.
CEO나 COO를 외부에서 등용하는 경우도 많고, 일본에 비해 임원이 되는 나이도 빠르지만, 업적이 나쁘면 바로 퇴직하게 되고 그 뒤엔 그룹내에서 일할 기회를 주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실력주의가 철저해요. 물론 일본도 실력주의, 직무형고용(ジョブ型雇用)을 채용하는 기업이 늘어 연공서열 문화는 많이 사라졌지만 한국이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틱하게.
다만, 최근 젊은 사람들은 옛날처럼 일에만 매달리지 않고 이른바 ‘WORK LIFE BALANCE’를 중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사평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나 불만이 있으면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일본과 다른 점인 것 같네요.
한국의 노조가 상당히 강하다는 것도 일본과의 차이점이겠죠. 서울 중심부를 봉쇄하는 대규모 노조 집회 및 데모가 빈번히 일어나는 것에도 놀랐습니다. 물론 재벌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 직종별 격차가 상당히 크다는 것이 그 원인일 수 있겠지만 한국이 갖는 노동문제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이제 곧 일본에 돌아가시는데요. 한국 주재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
우선, 한국에 대해서 폭넓게 배울 수 있었던 연세대학교 Gateway to Korea나 이업종 교류회, 그 외 주재원 간의 식사회 등에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이번 주재 기간엔 코로나로 일본에 돌아갈 수 없어 고생한 사람들이 많았을텐데요. 외식이 제한되었던 때는 저의 자택에 여러 사람들을 초대해 손수 요리를 해 즐기기도 했습니다. 정말 고통을 함께 나눈 전우와 같은 기분으로 친목을 쌓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직접 요리를 선보일 경우엔 요리책이나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다양한 일본 요리에 도전했습니다. 귀국하면 가족들에게 선보일 레파토리가 늘어서 좋습니다.(웃음)
코로나 기간 동안 일본에 돌아갈 수 없었던 만큼, 부산, 경주, 설악산, 동해, 여수, 안동, 순천 등 한국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특히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순천만습지의 웅대한 자연이 인상적이었는데, 회사 직원들 중에 이곳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놀랐습니다. 일본에선 세계유산에 등록되면 매스컴이 대대적으로 다루어 관광객이 엄청나게 몰려가거던요.(웃음) 그래도 이렇게 한국의 아름다움, 전통, 역사를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코로나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나라에 주재하든 그 나라에 대한 경의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그 나라의 역사, 문화, 정치, 경제를 배워야 합니다. 특히 한일관계는 정치, 역사에 다양한 과제가 있음에도, 일본의 입시교육에선 근대사 교육을 거의 하지 않아 많은 일본인이 한일관계에 대해 미디어에서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주재하면서 저도 저 나름대로 각 분야에 대해 공부했지만, 연세대학교의 주한 일본기업 주재원에 특화한 최고위과정 Gateway to Korea에 참가해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스컴에서는 한국도 일본도 모두 민감한 기사를 많이 다루지만, 제 경험으로는 그런 불편하거나 불쾌한 느낌을 받은 적은 출장으로 왔던 때를 포함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친절히 대해주고, 일본에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한국사람들은 한 번 서로 신뢰하면 평생 친구로 지낼 수 있습니다.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귀임해서도 그 관계는 계속 변하지 않습니다.
한국사람은 그런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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