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이번 칼럼 주제는 한일의 청년실업에 관한 것이었다. 주제를 바꾼 이유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대선 국면에서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조금은 낯설고 어설프지만 무언가 분명한 변화가 있다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 변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지속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왜 그러한 변화가 생겼는지 어렴풋이나마 떠오른 단상들을 정리해 두고자 한다.
한일관계를 둘러싼 희한한 대선 국면
희한하고 미묘하다. 최근 대선 국면에서 한일관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일들 말이다. 모든 후보가 한일관계 개선을 말한다. 문재인 정부의 대일정책에 대해서는 각 후보의 입장에 따라서 비판과 옹호로 나뉘지만 지금의 ‘비정상적’인 한일관계가 지속되는 것은 모두 원하지 않는다. ‘비정상’이 새로운 ‘정상’으로 굳어지는 것에 대한 불편함과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한일관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그 어떤 후보도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마땅한 해법이 없어서인지, 각 후보 나름의 복안은 있지만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서로 눈치 싸움을 벌이는 형국이다.
위안부합의(2015),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에서 비롯된 지금의 비정상적인 한일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 않다’. 분명 있지만, 양날의 검처럼 좀처럼 꺼내 쓰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대선 국면에서 여론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날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자칫 자충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방법에서 과연 한국 정부와 대선 후보들이 국내 반발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어디까지인가? 일단 일본 정부의 입장을 간단하게나마 정리해 보자. 위안부합의든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이든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한 만큼 원상 복구의 책임은 전적으로 한국에 있기 때문에 어떠한 정치적 타협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단호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 게임에서 더 이상 플레이어가 아니다. 원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배려, 즉 정치적 타협이라는 선택지가 이미 일본 정부로부터 ‘기각’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내에 다른 선택지를 모색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 때문에 한국의 대선 후보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만 주어진다. 양보냐 대립이냐의 문제로 귀착된다. 양보는 일본의 요구에 따라 대법원 판결을 무효화시키는 것이며, 대립은 피고기업의 압류자산 매각 절차를 밟거나 이행을 보류함으로써 악화된 한일관계라는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다. 문제는 대선 후보들이 이 중에서 어느 하나를 분명하게 선택할 경우 선거에서 타격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선 후보들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후보들은 왜 ‘구체적인’ 대일정책 공약 발표를 주저하는가?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한국의 국민 정서상 양보는 ‘친일’, 대립은 ‘반일’이라는 이미지를 갖기 때문에 지금까지 모든 대선 국면에서 후보들은 대체로 대립을 선호하며 양보의 의향이 있더라도 최대한 그러한 이미지를 숨겼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좀 다르다. 모든 후보들은 대립과 양보의 이미지 중 어느 하나라도 드러내려고 하지 않으며 한일관계의 개선만 외치고 있다. 왜 그럴까?
누구나 짐작하겠지만,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중국 변수’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에 대한 반감이 증가하면서 그것이 한국 국민의 대일관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이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그동안 한국 사회의 이념적 분열의 대립축은, 실제와 다르게 언론과 정치인, 학자들이 편의상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지만, ‘친미 대 친중’, ‘친북 대 반북’으로 상징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기에 ‘친중 대 친일’ 또는 ‘반중 대 반일’이라는 대립축이 추가된 것은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해 보게 된다. 최근 발표된 일련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말이다.
2021년 8~9월에 조사한 동아시아연구원-겐론NPO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대중 호감도(10.7%)보다 2배나 높았다. 둘 다 여전히 낮은 수준이지만, 중국과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제로섬 관계로 들어간 것은 아닐까 의심케 한다. 특기할 만한 점은 같은 조사에서 한미일 군사안보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64.2%, 한일 경제협력 강화에 대한 요구도 43.2%로 높아졌다. 이러한 여론의 변화는 중국에 대한 반감이 높아진 것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호감도 저하에 더해 한국의 대중 군사적 위협인식이 61.8%(전년 조사 44.3%)로 급증했다는 결과도 중국변수의 영향력을 말해 준다.
이 조사 외에도 대선 후보들이 구체적인 대일정책 공약 발표를 주저하게 만드는 조사결과가 있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큰 유권자 집단인 중도층의 대일관, 한일관계에 대한 인식이 그동안 지배적이라고 예상했던 반일 정서와는 사뭇 다른 결과가 나왔다. 1월 초에 <아시아경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도층은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강경한 태도(32.6%)보다 미래지향적 태도(63.5%)를 선호했다. 과거사나 이념보다는 자신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를 과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 최근 발표된 어떠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여전히 아무리 많아야 30%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게다가 앞의 동아시아연구원-겐론NPO 조사에서는 한국 국민의 38.6%(전년 조사 44.1%)가 여전히 일본의 군사적 위협을 느낀다고 답변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여야 후보 모두 대일정책에 대해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떻게’를 뺀 한일관계 개선만 외칠 수밖에 없다. 그 어떤 후보도 한일관계를 두고는 경쟁하려 하지 않으며 선거 이슈가 되는 것을 꺼릴 뿐이다. 대선이 끝나고 신정부가 들어섰을 때 한일관계는 어떠한 운명을 맞이할까?
중국변수와 한일관계의 운명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여전히 낮음에도 절반 이상의 한국 국민이 한일관계 개선을 바라는 현상은 다소 모순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순은 쉽게 해결된다. 역사 인식에 있어서 일본이 사실을 왜곡하거나 사과와 반성을 진정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밉지만 적어도 두렵지 않다는 감정이 작용한다면 어떨까? 최근 자주 듣는 한일관계의 상대적 대등화에 따른 자신감의 발로가 아닐까 한다. 수혜의 입장에서 대등한 경쟁 관계로 바뀌었다는 인식 말이다. 여기에 새롭게 공통의 두려운 상대가 나타났다면 미워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다. 오랜 미움으로 생긴 피로감은 덤이다. 감정이나 인식의 문제는 원래 그렇다.
그럼 왜 한국 국민은 일본보다 중국을 더 미워하고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미리 밝히자면, 실은 중일 양국에 대한 필자의 감정과 인식 또한 최근에 역전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중국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그 실체는 한반도문제나 경제문제에서 협력하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에 가까웠다. 강압이나 군사적 위협에 따른 두려움과는 다른 것이었다. 게다가 흔히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을 대할 때 무의식적으로 갖게 되는 우월감, ‘우리보다 못한’ 존재라는 얕보는 감정이 그러한 두려움마저 상쇄해 왔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지금의 두려움은 하드 파워로써 한국의 자유의지를 구속할 수도 있다는 위협에 대해 갖는 두려움이다.
‘한한령’으로 대표되는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가 있었을 때만 해도 그리 오래 가진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벌써 육 년째 이어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 한한령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문화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통제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국민들의 공분을 샀던 김치나 한복의 중국문화화 시도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중국 정부가 그것을 정책으로 내세우며 직접 나서는 일은 없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외교적 대응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 얄밉게도!
시진핑 제3기 집권을 앞두고 중국 전역에서 문화대혁명을 떠올리는 정풍운동이 일고 있는 것 같다. 필자가 중국에 대한 기대를 접은 것은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국내정치 영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라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그 정풍운동에는 배외주의는 물론 제국주의와 닮은 중화사상이 짙게 배어 있어서 두렵다. 이러한 중국에 대한 반감과 불호가 그토록 경계하고 비판했던 일본의 내셔널리즘을 상대적으로 약하게 보이게 만든 것은 아닐까?
중국 내에서도 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닭을 죽여 원숭이를 겁준다’는 의미의 살계경후(殺鷄儆猴)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중국의 국익에 반하는 선택을 하는 국가에 본보기로 경제적 불이익을 줌으로써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게 경고를 보내는 중국의 공세적 대외행동에 자제를 요청한 것이다. 다만 중국 정부가 이러한 국내 비판을 수용할 것 같지는 않다. 중국 정부는 살계경후가 미중 사이에 낀 국가들이 미국 편을 들지 못하도록 막는 유일한 전략적 자산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미중대립이 격해지는 가운데 올해는 한중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곧 출범할 한국의 신정부에게 한중관계와 한일관계는 골치 아픈 사안이다. 반중 전선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기도 따르기도 어렵다. 야당 대선 후보가 반중 정서를 드러내고 한 기업인의 멸공 발언에 동조하는 등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결국은 그들도 중국과 척을 지는 선택은 하기 어려울 것이다. 안미경중(安美經中)을 말하지만, 경제와 안보를 나눌 수 없는 신안보·신경제 시대에 그것은 정책 선택지가 될 수 없다. 누가 대선에서 이기든 신정부에서 반중정책은 결코 없을 것이다. 반중과 친일의 제로섬 관계는 감정과 인식의 영역에서만 가능하지 정책에서는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어렵지만 굳이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는 선택지도 있다. 그래서 한일관계 개선이 미중 사이의 선택적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등장한 것은 아닐까 한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중국과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높고 중국에 대해서 같은 두려움을 공유하게 되었기 때문에 한일 협력과 연대의 필요성이 높아진 것은 아닐까? 한국과 일본은 모두 자국이 중국에게 닭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당신에게는 다 계획이 있군요! 하지만!
여야 대선 후보들은 모두 선거 국면에서는 ‘어떻게’ 한일관계를 개선할 것인지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대선이 끝난 후에 그들은 무언가 정치적 결단을 내릴지도 모른다. 비정상적인 한일관계라는 현상을 유지할 수 있는 시한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당신에게는 다 계획이 있군요!”
하지만 풀겠다는 이의 의중을 넌지시라도 알려야 하지 않을까? 상대가 오해하지 않도록 말이다.
과연 한국 대선 후의 한일관계는 어떤 운명을 맞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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