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법률체계를 가진 국가들의 범죄(형사범)의 태양은 대동소이하다. 예컨대, 남의 물건을 훔치면 이를 절도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것과 같이, 어떠한 행위가 범죄가 되는가 하는 형사 실체법의 내용은 대부분의 국가들이 비슷한 면이 많다. 물론, 그 범죄에 대하여 처벌을 어떻게 하는가는 각 나라의 상황에 따라 달리 정하여 진다. 근대 국가에서는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는 육체에 가하는 형벌인 태형{죄인의 등짝이나 볼기를 형장(刑杖, 매)으로 치는 형벌}이 중동의 국가에서는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아도 이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과 한국도 범죄의 태양은 대동소이하다. 물론, 개별법등에서 형사처벌을 하는 규정을 두는 경우는 다르다. 일례로, 우리나라는 노동 관련 법률(근로기준법 또는 중대재해처벌법 등) 위반의 경우에도 형사처벌을 많이 하는데, 간혹 이러한 법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 주재원들이 한국에서 노동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하면 매우 당황해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반면, 범죄의 태양은 유사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범죄(죄명 별)구성비율을 보면 양국이 판이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즉, 가장 많이 범하는 범죄가 어떤 것일까 라는 점에서 보면, 양국의 성향이 다른 점을 잘 알 수가 있다.
먼저, 2019년을 기준으로 일본의 경우 총748,559건의 형사범 중, 71.1%가 절도죄, 기물손괴죄가 9.6%, 사기죄가 4.3%, 폭행죄 4.0%, 상해죄 2.8%, 횡령죄 2.3%, 주거침입죄 1.7%, 강제추행 0.7%, 그 외의 범죄가 3.4%를 차지한다.
즉, 절도죄가 70%를 넘어 압도적이고 사기나 횡령 등 재산 범죄의 비율이 그렇게 높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하여 2019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경우를 보자. 총1,041,395건의 형사범 중, 사기죄 30.1%, 절도죄 18%, 폭행죄 15.5%, 횡령죄 5.8%, 손괴죄 5.6%, 상해죄 3.9%, 성폭력범죄 3.1%, 문서위조죄 1.4%, 공무집행방해죄 1.2%,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죄 0.1%, 그 외의 범죄가 15.2%를 차지한다.
위 내용을 편의상 항목별로 비교하여 표를 만들면 아래와 같다.
일본 (748,559건) | 절도 71.1% | 손괴 9.6% | 사기 4.3% | 폭행 4.0% | 상해 2.8% | 횡령 2.3% | 주거침입 1.7% | 강제추행 0.7% | 그 외 3.4% |
한국 (1,041,395건) | 절도 18% | 손괴 5.6% | 사기 30.1% | 폭행 15.5% | 상해 3.9% | 횡령 5.8% | 문서위조 1.4% | 성폭력 3.1% | 그 외 16.4% |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일어나는 범죄는 단연 절도다. 반면, 한국은 사기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다. 대검찰청이 발표한 '2019 범죄 현황'에 따르면 한국도 2014년까지는 절도가 범죄율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2015년 사기 발생 건수가 25만7,620건을 기록하며 절도 발생 건수(24만6,424건)를 앞질렀다. 이후 2017년 사기 발생 건수는 24만1,642건으로 18만4,355건 발생한 절도와 차이는 크게 벌어졌다. ‘2018 사법연감’ 역시 결과는 같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은 사기 범죄 발생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13년 발표한 '범죄 유형별 국가 순위'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7개 회원국 중 사기 범죄율 1위를 기록했다. 국가별로 같은 인구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한국에서 사기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했다는 의미다. 형사정책연구원의 ‘2016 전국범죄피해조사’ 결과에 따르면 14세 이상 국민 10만명 당 1,152.4건의 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국민 100명 중 1명은 사기를 당한 셈이라고 한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디지털 네트워크의 발전으로 인한 신종 사기 범죄가 늘어난 것도 한 이유이긴 하나, 먼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한국이 고소·고발이 상대적으로 많은 나라라는 사실이다. 즉, 사기죄 등 재산 범죄는 대부분 고소·고발로 사건 수사가 시작되는데, 한국은 일본 등 다른 나라에 비해 고소·고발이 월등히 많다. 그래서 한국이 사기죄 비중이 가장 큰 나라가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박강우 교수와 단국대 법학과 이정민 교수가 정부에 제출한 「경찰단계에서의 고소·고발 제도 처리절차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의 고소·고발 건수는 50만 건을 오르내리고 있다고 한다. 형사사건 중 20% 이상을 고소·고발 사건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2007년의 예를 살펴보면, 한국 경찰에 접수된 고소·고발 건수는 41만8,714건으로 인구 1만명당 86.8건이다. 이웃 일본의 해당 건수는 1만6,958건, 인구 1만명당 1.3건과 비교할 때 66.7배 높은 고소·고발률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일본은 한국에 비해 고소·고발 절차가 무척 까다롭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국 사회가 얼마나 고소·고발을 남발하는지 알 수 있다.
한국은 왜 이렇게 고소·고발이 많은 나라가 되었을까? 한국인의 정서적·심리적 특성, 사회적 신뢰도의 문제, 역사적 배경 등을 지적하는 여러 견해들이 있으나, 최근 대통령 선거 과정을 지켜보니 툭하면 상대를 삿대질하며 형사 고소·고발을 일삼는 한국 정치가 큰 몫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되든 안 되든 묻지마 고소·고발부터 하고, 또 수사 결과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검찰이나 경찰을 비난하는, 이러한 정치권의 행태가 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 사람들에 대한 불신을 높이고 한국 사회의 고소·고발 남발 풍토를 부추기는 것 아닌가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고소·고발이 남발되는 결정적 원인을 이야기하자면, 고소·고발인의 말 한마디로 피고소·고발인을 ‘피의자’로 전락시키는 우리의 형사 법제에 있다고 본다.
현행 한국 형사소송법은 고소·고발 사건에 대해 전건입건제(全件立件制)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는 수사기관에 고소·고발이 접수되는 순간 반드시 조사해야 하고, 조사를 위해서는 피고소·고발인을 공식적인 수사 절차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 입건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건된다는 것은 ‘피의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소·고발이 아무리 터무니없고 불합리하거나 악의적인 것일지라도 피고소·고발인은 피의자로서 형사 절차에 연루되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수사 결과 무혐의로 불기소가 되더라도 피의자 신분에서 벗어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피의자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도 고통을 받는다.
고소·고발 사건 전건입건제는 문제가 생기면 ‘고소·고발부터 하고 보자’는 법문화를 낳았고, 민사사건의 형사화 경향을 가져왔다. 고소·고발로 형사 절차상 고통을 줌으로써 민사 분쟁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피고소·고발인을 압박하고, 형사 절차에서 드러나는 서류나 수사기관이 작성한 조서를 민사재판의 증거로 확보한다. 또 현실적으로도 민사적 해결로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찾지 못해 형사절차를 취하는 경향도 있다. 즉, 민사소송을 하면 판결까지 시간도 많이 걸리고, 막대한 비용도 발생할 뿐 아니라 판정 결과로 인정되는 배상액도 실손해(實損害)에 한정돼 만족한 금액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면 형사 고소해 만약 가해자가 구속이 될 지경에 이르면,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형사합의금을 탈 수도 있기에 고소·고발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이를 은근히 부추기는 변호사들도 있는게 현실이다.
최근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에 따라 형사소송법의 개정이 있었으나, 고소·고발 사건의 전건입건제는 기본적으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현재와 같은 고소·고발 제도의 오남용을 막을 수 있는 형사소송법의 개정도 기대해 본다. 그리고 형사소송법상의 제도개혁과 더불어 형사적 고소·고발절차로만 집중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개선·보완하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 과징금의 대폭적인 인상, 사설 탐정제 도입 등을 제안하는 견해도 주목해 볼만하다.
한편, 고소·고발률이 높은 것은 국민들의 권리 의식이 높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다. 즉, 사법 질서를 활용해서 자기의 권리를 확인 받고자 하는 권리 의식이 높다고 보는 관점도 있을 수 있다. 개별적 침해에 대한 권리구제 요청은 사회를 좀 더 투명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일본은 한국에 비하여 집단적이고 소극적인 국민성향으로 인하여 권리구제 방법이 법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비공식적인 합의 과정이나 행정지도 같은 것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이에 일본은 통계적으로는 사회가 안정되어 보인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경향이 권리의식이란 측면에서 개개인의 국민들이나 사회 전체로 보아,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지난 번 글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재산 범죄에 관한 한 원칙적으로 고소·고발장을 수리하여 주지 않는 일본의 제도 역시 문제가 많은 제도 임은 분명하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 너무 양 극단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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