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처음으로 일본 변호사 사회의 면면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2000년으로, 당시 와세다대학 법과대학원의 객원연구원 자격으로 1년간 일본에 체류할 때였다. 그 후로 지금까지 일본 변호사들과 교류해 오면서 한국 사회와 일본 사회 속에서 변호사에 대한 인식, 대우, 사회적 위치 등에 차이점이 많음을 알게 되었고, 특이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에 이번 글에서는 한・일 사회의 변호사의 몇몇 단면들에 관하여 이야기해 보겠다.
일본에서의 경험 중 먼저 기억이 나는 것은 변호사에 대한 ‘호칭’이었다. 일본에서는 변호사들 사이는 물론 일반인이 변호사를 부를 때 “○○先生(센세~)”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일본어로 ‘센세~”는 우리말로 ‘선생님’에 해당하고, 이 호칭에는 우리말의 그것보다 더 존경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경칭 임을 알고 있었기에 일본에서의 변호사는 일본인들에게 꽤나 존경 받는 위치에 있구나 하고 느꼈다.
한편, 일본에서는 중의원, 참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국회의원도 ‘센세~’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을 보고, 국회의원도 존경받는 존재로 생각하는가? 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러던 중 몇몇 일본인들에게 “한국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데, 왜 일본에서는 지역구를 세습하는 국회의원들이 많으냐?”라고 물었는데, 그 때 대부분의 대답은 “그들은 대대로 정치를 전문적으로 해 온 가문의 사람들이니 그들에게 정치를 맡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않느냐?”는 반문이었다. 이러한 답변을 듣고서야 일본인들의 ‘센세~’라는 호칭에는 단순히 사회적 지위에 따른 존경의 의미 보다는 한 분야의 전문가를 존중한다는 의미가 더 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예전에는 변호사에게 ‘영감(님)’이라는 호칭이 자주 사용되었다. 한국 변호사는 전직 판∙검사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전 관직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불린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금은 그런 호칭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고, 단순히 ‘변호사(님)’ 정도로 불릴 뿐, 그다지 존경 받는 대상으로 인식되지는 않는 것 같다. 변호사에게 소송을 의뢰하는 것을 소위 ‘변호사를 샀다’고 폄하하기도 하는 우리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일본과 한국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로서 대변 되듯이 한국은 어떤 신분이라도 고등 고시 등을 통해 판검사나 고위 공무원으로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이는 교육열로 연결되었고, 근대 한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에 큰 자양분이 되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한편, 일본은 신분 위계질서가 명확하여 신분 이동이 어려운 봉건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기에 한 분야에서 대를 이어 일가를 이루는 가업 승계가 보편화 되어 있었다. 이는 ‘400년 전통의 우동집’이 말해주듯 한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는데 큰 기틀이 되었다. 따라서 일본의 경우, 신분 상승을 통하여 획득한 사회적 지위보다 한 분야의 전문가를 보다 인정하고, 존경하는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으로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도 ‘센세~’라고 불리게 되지 않았나 짐작된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의사를 비롯해 변리사, 회계사, 세무사 등 전문가도 ‘센세~’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이런 호칭의 문제만을 보아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를 알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일본 변호사의 모습을 보고 부럽다고 느낀 점이 있다. 그것은 변호사에 대한 의뢰인의 충성도, 즉,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두터운 신뢰 관계’이다. 한번 관계를 맺은 의뢰인과 변호사는 그 변호사가 큰 잘못을 하지 않는 한, 오랫동안 신뢰 관계를 유지한다. 이런 관계는 대를 이어 계속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예컨대, 한 기업의 사장이 은퇴한 이후는 그 기업을 승계한 후계자가 선대 사장과 그 변호사의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경험한 일로, 일본 굴지의 기업에서 고문 변호사를 맡고 있는 법률사무실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소속 변호사가 고작 2~3명 정도의 작은 사무실에 우선 놀랐다. 80대의 노 변호사가 50년이상 해당 기업의 고문 변호사 업무를 해 오셨다고 하였고, 이제는 젊은 변호사와 함께 계속 그 업무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 기업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고문 변호사를 신임하고 마음 놓고 상담하고 자문하는 신뢰 관계를 이어가는 모습이 부러웠다. 비록 고문 변호사가 어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할지라도 일단 그 고문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하고, 고문 변호사를 통하여 해당 분야의 전문 변호사를 소개 받아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일본 의뢰인의 변호사에 대한 충성도가 부럽기만 했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두터운 신뢰 관계를 보기 힘들다. 아무리 고문 계약을 맺고 있다 하더라도 중요한 소송 사건이나 대규모 프로젝트가 생기면, 사안 별로 다른 여러 법률사무소로 하여금 비용을 포함한 제안서를 내게 하여 경쟁 입찰(Bidding)을 시킨다. 이를 통해 위・수임 관계가 매번 결정된다. 변호사는 사건을 수임하기 위해 소위 가격후려치기, ‘덤핑’을 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의뢰인과 변호사의 관계는 말 그대로 사무적인 관계일 수 밖에 없고, 의뢰인의 충성도 역시 낮다.
의뢰인의 충성도가 한일간에 다른 것은 그 문화적 차이를 보여준다 할 것이다. 즉, 자신들의 공동체적 와(和,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나까마(仲間, 동료) 의식을 소중히 여기는 일본 특유의 문화가 이런 의뢰인의 충성도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변호사와 의뢰인 관계뿐 아니라 변리사, 회계사, 세무사 등 전문가에 대한 관계에도 영향을 미쳐, 이 또한 한번 관계를 맺으면 오래 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기업의 하도급 관계나 서플라이체인에 들어가 한번 관계를 맺으면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경향들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문화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일본에서는 한국 법조계의 불공정한 관행이라 비난 받아왔던 ‘전관예우’라는 것이 거의 없고, 그러한 용어 또한 사실상 사용되지 않는 것 같다. 일본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면 수료 성적이나 본인의 의사 등에 따라 판사, 검사로 임관되거나 변호사로서 법조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대체로 첫발을 내디딘 분야에서 평생을 일한다. 다시 말해, 판・검사들은 정년까지 근속하는 것이 보편적이고, 정년퇴직 후에 변호사를 개업하는 경우에도 전 직장을 이용한 영업(?)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법원・검찰에 있다가 정년까지 근속하지 않고 도중에 그만두는 경우, ‘저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어 그만둔 것이 아닌가?’ 라는 사회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법원과 검찰은 아직은 관료 의식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후배 기수가 자신보다 높은 직위로 승진을 하면 속칭 ‘옷을 벗는 사람들’이 많다. 타의 반, 자의 반의 불명예(?) 퇴진이 관행이었다. 특히, 고위직(차관급)인 고등법원 부장판사나 검찰청 검사장 직위는 그 수가 한정되어 있기에 그 자리로 승진하지 못한 판・검사들은 대체로 소속 기관에서 나와 변호사로 전직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전 직장에서의 지위, 인맥 등을 활용한 영업(?)을 하며, 변호사 개업 후 몇 년 안에 평생 벌어야 할 돈의 대부분을 번다는 식의 전관예우 관행이 만연해 있었다. 심지어는 법원・검찰의 현직에 있는 것을 ‘보험을 들어 놓은 것’이라고 까지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다. 전관예우 관행은 변호사 집단만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특히 수사과정이나 재판과정에서 부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한 국가의 사법체계 자체의 신뢰성을 추락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전관예우가 아니라 전관비위 내지 전관비리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할 만 하다.
물론, 이러한 전관예우의 관행에 대하여 많은 사회적 지탄이 있어 왔고 법조계 특히 변호사 사회에서도 자체적인 정화 운동도 있었다. 무엇보다 로스쿨 제도 등의 영향으로 법조인 수가 많아진 요즘은 법조계 안팎으로도 전관예우와 같은 악습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또 법원과 검찰에서 정년을 맞이 하겠다는 법조인들도 늘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즉, 이제 전관 변호사가 개업하여도 돈을 벌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 것 같다. 아무튼 한국의 법조계도 사법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고 실제로 많이 변했다. 특히 법원은 법조 경력 5년 이상인 법조인을 대상으로 판사를 임용하는 방식으로 임용 방식이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변호사 생활에 길들여진 법조인들이 굳이 법원으로 가기를 꺼려하는 경향도 생겼다. 그럼에도 법원의 판사로 간 법조인은 법원에서 정년까지 근속할 각오로 가는 것 같이 보인다. 향후 법원에서 정년을 맞는 판사들은 더욱 늘어날 것 같다. 그리고 최근 검찰의 수사권 완전 박탈하는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는 바람에 이에 반발하여 옷을 벗은 고위직 검사들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 영향으로 신입 법조인들이 검찰로의 진로를 정하는데 주저하는 분위기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생긴다. 아무튼 한국의 법조계는 일본에 그것에 비하면 정말 다이내믹한 것 같다! 한국 사회가 일본에 비하여 역동적인 것처럼 말이다.
최근 일본의 판・검사들이 정년을 채우지 않고 변호사로 전업하는 법조인 수가 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제 일본도 바뀌는구나 생각이 든다. 하지만, 2021년도 일본 변호사백서에 따르면 그해에 신규로 등록한 변호사 1,576명 중, 판・검사 출신은 각 49명 밖에 없다고 하니, 아직도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일본 변호사들과 교류를 하며 느낀, 서로 다른 점 몇가지 살펴 보았다(물론, 이러한 점들뿐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다른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언젠가 기회가 되면 소개하고 싶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일본을 통하여 근대 법률을 계수한 한국은, 변호사 제도 역시 일본을 통하여 받아 들였다. 따라서 법조인으로서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는 등 그 실상이 유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역사적 차이 및 사회변화 속도의 차이 등의 요인으로 미묘한 부분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차이점을 알고 이해하는 것 또한 한국과 일본을 정확히 이해하는 하나의 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한일관계의 정확한 이해가 두 나라의 창조적 우호관계 발전에 기초가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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