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기자] 나만 알고 싶은 도심 속 노천탕과 가성비 스시, 그리고 힐링 산책


일본에서의 유학시절. 빡빡했던 유학생의 일상에 오아시스 같은 곳이 있었다. 그리고 유학을 마치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을 갈 때마다 꼭 들르는 곳. 지금껏 한국인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래서 나 홀로 비밀스레 알고 있고 싶은 곳. 오늘 그곳. ‘우쓰쿠시노유(美の湯)’를 소개한다. 


(사진) 이노카시라공원 전경. 기슭에서 찍어 실제보다 멋스럽지 않다. (사진 출처: 권세민 청년기자)

도쿄 유학 당시, 2년 가량을 스기나미구에서 지냈고, 가장 많이 탔던 전철은 게이오 이노카시라선(京王 井の頭線)이었다. 시부야에서 이노카시라선을 타고 등하교를 했고, 시간이 날 때면 이노카시라선 종점인 기치조지(吉祥寺)에 위치한 이노카시라공원에 산책 가는 걸 좋아했다. 일본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은 마을 1위로 여러 번 선정된 바 있는 기치조지에 위치한 이노카시라공원은, 오리배를 탈 수 있는 호수, 동물원, 지브리 박물관 등 즐길거리가 많은 핫플레이스로 유명하다. 참고로 기치조지와 이노카시라공원은 필자가 소싯적에 열광했던 학원액션 애니메이션 ‘로쿠데나시 블루스’의 주요 배경지이기도 해서 만화 주인공들을 연상하면서 산책하는 즐거움은 덤이었다.


(사진) 이노카시라선 전철 안에서 볼 수 있는 우쓰쿠시노유 간판 (사진 출처: 권세민 청년기자)
 

본론으로 돌아와, 유학 시절 찌든 영혼으로 이노카시라선을 타고 귀가하던 중, 전철 창밖으로 무언가 온천이 있음을 연상케 하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집에 와 검색해 보니 ‘美の湯’라고 쓰고, 우쓰쿠시노유라고 읽는 로컬 온천이 있음을 확인하였고, ‘이건 가봐야 해!’ 혼잣말 내 뱉으며 세면도구를 간단히 챙겨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초등학생 시절, 차 타고 지나다 골목 어귀에 처음 보는 오락실 간판을 보고서, 어떤 신종 게임기가 있을까 이튿날 부푼 마음 안고 찾아가는 심경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우쓰쿠시노유를 찾았고, 그때 그 첫 만남 이후로 그 온천은 내게 시간만 나면 늘 찾고 싶은 최애 휴식터가 되었다.

(사진) 우쓰쿠시노유 온천 실내 (사진 출처 : 우쓰쿠시노유 홈페이지)


다카이도역에서 나와 도보로 약 2분. ‘이런 곳에 온천이?’ 라는 의아함도 잠시, 슈퍼마켓 입구 옆 갈림길로 연결된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온천 입구가 나오고, 온천 입장권과 타월 등을 자판기로 구매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성인 기준 평일 980엔, 주말 1250엔인 입장권을 구매하고 탈의실을 거쳐 온천 시설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뿌연 수증기와 함께 보이는 적색 온천물이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지하 1,600m에서 용출되는 호박색 천연온천’이라는 설명처럼 흔하지 않는 색깔의 온천수는 고유의 향을 품고 있지만 전혀 거리낌 없이 쾌적하다. 탕 안에 등을 대고 창밖에 보이는 나무와 바위 등을 보고 있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사진) 우쓰쿠시노유 온천 노천탕 (사진 출처 : 우쓰쿠시노유 홈페이지)


온천의 실내에는 각종 마사지 기능이 있는 탕과 이른바 핀란드식 사우나도 겸비하고 있는데, 사우나에는 3개 단으로 이루어진 계단식 형태에 TV도 장착되어 있어 땀 흘리기엔 제격이다. 그러나 역시 우쓰쿠시노유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노천탕이다. 노천탕에는 서로 다른 특징의 탕 3개가 마련되어 있고, 일본식 정원처럼 아기자기한 나무와 식물들, 그리고 바위와 돌들로 조경이 되어있다. 그리고 도심에 위치해 있지만 하늘을 제외하곤 사방이 일본식 나무 구조물로 차단되어 있어 오롯이 온천욕에 집중할 수 있다. 한 날은 큰 호랑나비가 노천탕을 한참을 날아다니며 이곳저곳에 앉았는데, 그 모습은 참 몽환적이었다.


(사진) 온천 후 1층 미도리스시에서 먹는 스시 (사진 출처: 권세민 청년기자)


독특한 색깔과 향의 온천수로 목욕을 마치고 나면, 우쓰쿠시노유의 숨은 매력을 만날 시간. 바로 일본에서도 가성비 높기로 인기 있는 미도리스시(美登利寿司)가 온천 1층 슈퍼마켓 안에 위치해 있다는 것. 지금은 종이에 수량을 적어 하나하나 주문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얼마전 까지만 해도 회전식으로 운영되었던 터라 맛깔스러운 초밥들이 눈앞을 계속 지나가는 것은 보기만 해도 행복감을 주는 것이었다. 온천욕 후에 가성비 좋은 스시와 나마비루(생맥주), 이 궁합을 넘는 만족감이 또 있을까. 물론 그만큼 인기도 많아 식사 시간대에는 늘 대기 줄이 있음으로 시간차 전략적 접근은 필수.

(사진) 간다가와를 따라 걷는 하천 길 산책. 벚꽃 피는 봄엔 더욱 일본스럽다. (사진 출처: 권세민 청년기자)


몽롱함과 배부름을 누렸으면 이젠 일본 로컬 주거지를 가로지르는 하천 길 산책이 마무리 코스. 다카이도역으로 돌아가 고가철도 아래로 지나면 스기나미구를 가로지르는 간다가와(神田川)가 나타나는데, 이 하천을 따라 좌우로 벚꽃나무와 아기자기한 일본식 주택들이 즐비해 있고, 곳곳에 공원들을 거쳐 지나가면 기치조지의 이노카시라공원까지 연결된다. 새소리, 바람 소리, 간혹 지나가는 자전거 소리와 조깅하는 사람들의 숨소리, 그리고 지상으로 다니는 이노카시라선 전철 소리와 차단기 신호음 종소리. 어느덧 한국 도심에선 듣기 힘들어진 소리들의 조합을 감상하며 오리와 잉어들이 헤엄치는 하천 길을 따라 걷고 있으면 그야말로 무념무상, 일본의 로컬 산책길이란 이런 것이란 느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유학시절 주 1회는 꼭 즐겼던 온천과 스시, 그리고 하천 산책길. 이 코스를 홀로 즐기며 여태 외국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여행객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어쩌면 진짜 일본스러운 정취를 느껴보기엔 최적의 코스가 아닐까. 이 글을 쓰면서도 손끝엔 우쓰쿠시노유 온천수가 닿는 것만 같고, 금방이라도 미도리스시와 나마비루가 입안으로 들어올 것만 같고, 조용한 간다가와 하천 길이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다. 계속 홀로 즐기고 싶던 나의 유학시절 힐링 코스를 JK-Daily 통해 소개한다. 게이오 이노카시라선을 타고 가다 이 기사가 생각나면, 다카이도역에 한 번 내려보시길.

(기사 작성 : 청년기자단 권세민 기자)
*본 기사는 JK-Daily 제 1기 청년기자단에 의해 작성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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