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퇴직금 이야기


일본의 크지 않은 기업에서 10년간 근무한 한국인 A씨는, 고국에 계신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사정으로 한국으로 돌아가야해서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이 회사에서 10년이나 일했으니 어느 정도 두둑한 퇴직금을 받을 것도 기대하였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퇴직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A씨는 자신이 입사할 당시 확인한 회사의 취업규칙에 ”퇴직금을 지급할 수 있다”라는 규정이 있었는데, 왜 지급하여 주지 않느냐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경우 취업규칙 등 사내 규정이 어떻게 되어 있든 퇴직금은 법적으로 당연히 보장된 것인데, 왜 일본에서는 지급하여 주지 않는 것이냐? 혹시 A씨가 한국인이라고 차별하는 것이냐? 등 여러가지로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결국 A씨는 회사로부터 퇴직금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취업규칙에 퇴직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퇴직금을 지급해 주지 않는 것은 그 일본 기업이 A씨가 한국인이라 차별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시는가?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외국인 차별’은 아니다. 이는 일본과 한국의 퇴직금제도가 각기 다르게 규정되고 운영되기 때문이다.

먼저 한국과 일본의 퇴직금제도에 대하여 알아보자.
한국에서의 퇴직금은 문자 그대로 근로자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었을 때 사용자(회사)로부터 받는 급여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하, ‘동법’이라 한다)'에서 이를 보장하고 있다. 즉, 퇴직금은 동법에서 그 지급을 보장하고 있는 급여로서, ‘계속 근로기간 1년에 대하여 30일분의 평균임금’이 최저기준액으로 정해져 있다. 단, 이러한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근로자는 1주의 평균 근로시간이 15시간 이상으로 1년을 초과하여 근로한 사람이다. 따라서 근로기간이 만 1년이 되지 않는 사람은 퇴직금을 지급 받을 수 없다. 그리고 동법 퇴직급여와 관련한 규정은 강행규정이므로 근로자가 개인적 사정으로 퇴직하는 임의퇴직이냐, 사용자에 의한 통상해고냐 징계해고냐 등 퇴직 사유에 관계없이 동법에서 정한 최저 기준을 보장한 퇴직금은 반드시 지급하여야 한다.

일례로 근로자가 회사에 크게 손해를 끼치고 해고되어 퇴사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동법에서 정한 퇴직금은 반드시 지급되어야 하는 것이며, 임금지급 4대 원칙 중 하나인 ‘전액지급원칙’에 기하여 회사에 대한 손해 부분을 상계하여 지급할 수는 없다. 만약 퇴직금누진제가 적용되는 회사일 경우, 동법에서 정한 최저기준액을 보장하고 그 금액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하여 취업규칙 등에 별도로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퇴직금 감액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아무리 회사가 그 퇴사하는 근로자에 대하여 받을 금원이 있다 하더라도 일단 법정 퇴직금을 먼저 지급하고 그 후 다시 그 근로자로부터 회사의 금전 채권을 지급 받아야 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는 사용자가 근로자의 퇴직급여 지급 재원을 퇴직연금사업을 운영하는 외부 운용(금융)기관에 일정한 금액 이상을 적립하고 이를 운용하게 하여 연금 내지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퇴직연금제도를 이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의 약 50% 이상은 이러한 퇴직연금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러한 퇴직연금제도에도 2가지 종류이 있는데, 근로자가 받을 퇴직급여액은 정해진 금액으로 확정되어 있고 회사의 적립금이 외부운용기관의 운용 결과에 따라 변동되는 확정급여형(Defined Benefit, DB형)과 회사가 내는 부담금이 사전에 정해져 있고, 근로자가 받는 퇴직급여가 적립금의 운용 결과에 따라 달라지는 확정기여형(Defined Contribution, DC형)이 그것이다. 즉, DB형인 경우 근로자가 받는 퇴직금액은 정해져 있는 반면, DC형인 경우 근로자 자신의 기금 운용 결과에 따라 받는 금액이 달라지게 된다.

한편 일본은 퇴직금제도는 어떠한가?
일본은 한국과 달리 퇴직금은 법정지급이 보장된 급여가 아니라, 사용자가 그 지급 조건 등을 명확히 규정하여 지급을 약정한 경우에만 법적으로 청구 가능한 권리로 인정되는 것이다. 즉, 취업규칙, 퇴직금규정 등 사내 규정이나 고용계약서 등에 퇴직금의 지급조건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는 경우가 아니면 아무리 장기간 근로를 하였다 하더라도 퇴직금을 청구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퇴직금을 청구할 수 있는 법적 권리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퇴직금에 관한 구체적 지급조건이 정해져 있어야 한다. 예컨대 취업규칙에 “퇴직금에 대하여는 별도 정하는 바에 따른다”라고 되어 있으면, 별도로 구체적인 퇴직금 지급조건을 명시해 두어야 한다. 위 사례에서 본 바와 같이 취업규칙에 “퇴직금을 지급할 수 있다”라고만 되어 있고, 정작 중요한 구체적인 퇴직금 지급조건에 대한 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처음부터 퇴직자에게는 회사에 법적으로 청구할 권리가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회사에서 퇴직금을 지급하는 조건, 절차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았더라도 회사가 관행적으로 퇴직하는 사람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여 왔었고, 노사간에 당연하게 지급되어야 한다는 관행, 소위 ‘노동관행’이 존재한다면, 이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퇴직금 지급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노동관행이 인정되는 회사는 특정의 퇴직자에게는 합리적 이유없이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와 같이 일본의 경우는 법으로 그 지급을 보장하고 있지 않기에, 회사는 퇴직금 지급규정에 회사에게 유리하도록 조건을 걸어 둘 수가 있다. 예컨대, “근속년수 5년 이상이 아니라면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라든가, “회사에 손해를 끼쳐 징계해고되는 사람에게는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라든가, “회사에 끼친 손해 금원 만큼 상계하고 지급할 수 있다”라든가 등 조건부 규정을 두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일본의 퇴직금제도의 내용과 운용을 알아 보고서, A씨의 사연을 보니 일본 회사의 주장이 이해가 간다. 취업규칙에 ”퇴직금을 지급할 수 있다”라는 규정만 있고, 구체적인 지급조건 등에 대한 규정이 없다면 A씨는 퇴직금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인데, 그 일본 회사는 지급 조건 등을 정한 구체적인 퇴직금 지급규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퇴직금을 지급하여 오던 노동관행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퇴직금 지급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이러한 일본의 퇴직금 제도에 익숙한 일본인 주재원들은 한국에서 퇴직하는 근로자가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치고 징계해고 되었는데, 그 사람에게도 최소한의 법정퇴직금은 우선적으로 지급하여야 한다는 한국의 퇴직금제도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한국의 법은 일본으로부터 계수된 법으로 체계상으로는 거의 비슷한데 구체적인 부분에 들어가면 차이점이 많다. 그 중의 하나가 퇴직금 제도이다.

물론 한국의 경우도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우리나라도 1953년에 퇴직금제도를 도입할 당시만해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강제성이 없는 임의제도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문화의 특성에 맞춰 조금씩 다른 제도로 변화하고 발전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퇴직금제도가 강제성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61년으로 당시에는 상시근로자 30인 이상 기업만이 대상이었다. 그러다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되어 퇴직금이란 용어보다 ‘퇴직급여’라는 용어로, 후불 임금의 의미로 사용된 것은 2010년부터이다.

그리고 현재 많은 기업에서 이용하고 있는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것은 2005년부터인데, 이는 퇴직금중간정산제도와 관련이 있다. 1997년 3월 도입된 퇴직금중간정산제도는 애초 근로자의 생활자금 마련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같은 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무려 9개 기업 그룹이 부도가 나는 사태가 벌어지는 등 국가적 경제위기를 맞았는데 당시 많은 기업에서 이미 퇴직금중간정산제도를 도입하여 실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퇴직 후의 생활안정에 기여한다는 당초 목적은 형해화되어, 지속적인 퇴직금 적립없이 그때그때 생활자금으로 소진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이러한 우려를 개선하기 위해 2005년 12월 퇴직급여를 회사 밖의 금융회사에 적립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퇴직연금제도가 단계적으로 도입되게 되었다. 그럼에도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기업에서는 여전히 중간정산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이런 점을 고려하여 2012년 7월부터 중간정산제도는 퇴직연금제도 도입에 관계없이 모든 사업장에서 중지되게 되었다.

한편, 일본의 퇴직금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근대적 제도로서의 퇴직금제도가 보급되게 된 것은 일본이 근대화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이다. 당시 일본은 유럽 열강을 따라 부국강병책을 실시하였는데, 특히 노동자(특히, 숙련노동자) 부족 문제가 심화되어 회사간에 숙련노동자를 서로 뺏어가는 사태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노동자를 자기 회사에 붙들어 두기 위한 방책으로 퇴직금제도가 도입되었다고 한다. 그 후 경제불황 하에서는 노사간의 분쟁 완화책으로, 노동자 해고 시에는 실업보장적 기능으로 퇴직금제도가 이용되게 되었고, 점점 장기근속자에 대한 공로보상금적 제도로서 역할을 하게 되어 1935년에는 100인 이상의 공장 53%가 퇴직금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1937년에는 “퇴직적립금제도 및 퇴직수당법”이 제정되어, 50인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소를 대상으로 퇴직금제도가 강제되기도 했다. 그 후 위 “퇴직적립금제도 및 퇴직수당법”은 1943년 6월 시행된 “노동자연금보험법(그 다음 해 ‘후생연금법’으로 개명)”에 흡수되는 형태로 폐지되었고, 기업의 퇴직금적립 기능은 노동자연금의 적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다 전쟁 패전 후 각 기업은 임의적으로 퇴직금제도를 부활시켰다.

현재의 일본 기업들의 퇴직급여(퇴직금 및 퇴직연금 포함)제도의 도입 실태는 어떠한가.
2018년 일본 후생노동성의 조사에 의하면, 일본 기업들 중 약 80%가 퇴직급여제도를 도입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기업측에서 임의로 제한을 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즉, 근속연수와 지급조건에 제한을 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퇴직급여제도 도입률을 보면 근로자수 1,000명 이상의 기업은 92.3%, 300~999명까지의 기업은 91.8%, 100~299명까지의 기업은 84.9%, 30~99명까지의 기업은 77.6%로, 기업 규모가 큰 곳일수록 도입률이 높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렇듯, 퇴직금에 관하여도 한국과 일본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러나 근로자의 실업보장적 측면, 노후 생활보장적 측면에서의 기능이 중요시되고 있다는 점은 한일 양국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이 아닌가 한다. 일본으로부터 법제도를 받아 들이면서도 일본과는 달리 법으로 강제하는 제도로 발전시킨 한국의 경우를 보며, 그 나라 특유의 사회・문화적, 역사적 배경에 따라 법제도는 얼마든지 바뀌는 것이구나 하는 점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필자> 박인동 변호사
- 現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 주일 한국기업연합회 법률고문
- (재)한일산업·기술산업협력재단 감사
- 前 일본 동경변호사회 회원 (2007-2014)
- 일본변호사연합회 국제교류위원회 간사 (2008-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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