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글에 이어 통제감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일본인들은 통제감을 얻기 위해 축소지향과 반대의 지향성을 갖기도 한다. 바로 확장이다. 바다에 떠 있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깊이와 방향을 알 수 없는 망망대해에서 빠른 물살과 거대한 파도까지 친다면 우리의 통제감은 절망적일 것이다. 큰 배라 하더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인간이 아무리 큰 배를 만든다 해도 바다에서는 일엽편주일 뿐이다. 통제감은커녕 자기 몸조차 가누기 어렵다. 이 무력감에 누구보다 민감한 것이 일본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일본인의 솔루션은 삼국지에 나오는 연환계를 닮았다. 배들을 쇠사슬로 묶어 덩치를 키운 뒤 양자강의 거센 물결을 이겨내겠다는 발상이 연환계다. 비슷하게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큰 전함 야마토大和호와 무사시武藏號호를 건조했다. 야마토호의 경우 길이 263m, 폭 39m에 만재배수량이 7만t에 이르렀다. 현대의 중형급 항공모함 크기다. 웬만한 파도를 압도할 이 배의 크기는 항해와 공격 그리고 방어를 안정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이런 확장지향적 솔루션은 일본 문화 전반에서 반복해서 나타난다. 건축물도 예외는 아니다. 옛수도 나라奈良에 가면 세계최대 목조건물이라는 도다이지東大寺를 볼 수 있다. 창건 당시의 대불전은 정면 폭이 11간에 86m였고 높이는 47.5m다. 그 안에 있던 노사나부쓰盧舍那佛는 현재 것의 3배 정도 크기였다고 하니까 높이만 48m 정도 되었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크기다.
교토에 있는 히가시 혼간지本願寺의 고에이도御影堂는 높이가 38m로 도다이지 대불전보다 낮지만 폭 58m에 정면이 76m로 건평은 더 넓다. 신사들의 크기도 마찬가지다. 이즈모오호야시로いづもおほやしろ로 불리기도 하는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는 1744년 재건되며 사라졌지만 원래는 100m에 이르는 계단을 올라가야 신사에 입장할 수 있었다. 이런 정도의 거대한 목조 건축물이 교토와 나라에는 즐비하다.
거대한 종교건축물의 건축동기와 거대 전함의 건조동기는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통제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거대함이 신앙심의 크기와 비례한다고 믿는다면, 그래서 신의 분노와 경고로 여겨지던 잦은 천재지변을 줄여 삶의 통제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면 바다에서의 통제감을 위해 거대 전함을 만든 마음과 같은 것이다.
이즈모타이샤의 본전인 가구라덴神樂殿 입구에는 길이 13m 무게 4.5t에 달하는 거대한 시메나와注連繩가 걸려있다. 전국의 신들이 모이는 신성한 곳이다 보니 잡신들의 출입을 단속하기 위해 강력한 시메나와를 만든 셈이다. 잡신들을 통제하는 것이다.
확장의 대상에는 전통 짚신인 와라지草鞋도 포함된다. 도쿄 센소지浅草寺의 호조몬宝蔵門에 있는 거대한 와라지는 길이 4.4m, 폭은 1.5m에 무게는 1t에 이른다. 후쿠시마 시에서 매년 열리는 ‘와라지 마츠리’에는 길이 10m가 넘고 무게 2t에 달하는 와라지 2개가 등장한다. 원래 와라지 축제는 여행의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가정의 안녕과 사업의 번창을 비는 의미로 열린다. 그리고 거대한 와라지의 배후에는 그 크기만큼 소원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러니 거대한 와라지의 심리적 동기도 앞서의 확장의 사례들과 다르지 않다.
확장 지향성은 구조물의 크기로만 향하지는 않는다. 맥락에 따라 물량의 많음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교토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의 본당은 건물의 길이가 118.2m에 이를 정도로 세계 최장의 목조건물이자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안치되어 있는 1,001개의 천체수관음상千体手觀音像이다. 넓은 본당을 가득 메운, 사람 키보다 조금 더 큰 천체수관음상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불교에서는 조사조불造寺造佛을 불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공덕으로 여긴다. 그 공덕을 크기가 아닌 물량으로 보여주는 경우다.
교토에 있는 후시미이나리伏見稲荷신사는 전국 이나리신사의 본사다. 이곳에는 4,000여개에 달하는 붉은 색 도리이가 끝없이 줄지어 서 있다. 시주자들의 시주로 하나씩 늘어나다 보니 이렇게 많아졌다. 그 밑을 걸으려면 족히 1시간은 걸린다. 도리이는 해롭고 불길한 기운을 막는 벽사의 용도를 갖고 있다. 요즘 식으로 이야기하면 해로운 세균 감염을 막기 위한 멸균실을 4,000번 거치도록 세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흔히 일본 문화의 특징으로 축소지향성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실제 일본을 다녀보거나 역사를 보면 거대한 것들도 참으로 많고 이는 어느 문화권에서건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어느 나라나 세계최대라는 수식어가 붙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거대한 것을 만든다는 것은 엄청난 인력과 자재 그리고 기술이 필요한 일이라 개인이나 집단의 힘과 권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힘과 권위를 이용해 거대하거나 엄청난 물량으로 세상에 대한, 혹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진시황의 병마용갱, 이집트의 피라미드 등이 그런 사례다.
오늘날에는 100층이 넘는 빌딩이나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나 댐 등으로 거대함을 과시하는 경우가 무척 많다. 이렇다 보니 일본의 경우 거대한 것보다 그것과 대비되는 축소지향적 사례가 눈에 띄고, 거대한 것을 향한 확장지향성은 무시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의 축소지향성 아래에 깔려 있는 마음을 이해한다면 그것이 확장지향성과 같은 맥락에 있음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일본인에게 각별한 통제감에 대한 욕구가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서로 반대 성향으로 보이는 축소지향성과 확장지향성이 길항하며 일본문화의 한 축을 이끌어 왔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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