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덤벙문화와 강박문화의 길항이다. 연재를 시작하며 이야기 했듯이 한 국가의 전체문화는 하위문화들 간의 밀고 당기는 관계 속에서 바라보아야 문화의 다면적인 특징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그런 관계 들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덤벙문화는 원래부터 있던 표현은 아니다. 최순우라는 미술사학자가 한국의 대충대충 만든 듯 투박하면서도 정감 넘치는 건축물이나 도자기를 보고 붙인 애정 어린 표현인데 이제는 한국 옛 미술의 중요한 특징을 뜻하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 덤벙이란 말 자체는 물이 튀거나 젖는 것을 개의치 않고 조심성 없거나 성급하게 물에 들어가는 모습을 뜻한다. 일본어로 가장 유사한 말은 “どぶん”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우리미술의 한 특징으로서의 덤벙은 이런 표피적인 면 너머에 있는 천연주의, 겉모습 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본질주의와 맥이 닿아있는 미학이요 가치관이다.
그래서 덤벙문화는 미술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한국인 전체의 마음에도 존재하는 정신인데 너무 애쓰며 안달하지 말고 자연과 운명에 순응하며 살라는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이런 마음가짐은 한국인 개인의 삶과 한국의 역사 속에서 때로는 순기능을, 때로는 역기능을 하기도 했었다. 역기능은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덜하거나 매사를 대충 처리하려는 습성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인데 이를 제어하는 것이 강박의 문화다. 이런 두 문화의 역학 덕분에 한국은 수평적 사고에 강한특징을 갖게 되었고 나름 높은 수준의 문화와 더불어 선진국(2021년 UNCTAD 인정)으로 발돋음 할 수 있었다.
수평적 사고란 심화형 사고와 대비되는 사고유형인데 심화형이 물이 나올 때까지 한 곳을 깊이 파는 방식으로 사고를 집중하는데 반해 물이 잘 나올 것 같은 곳을 계속 옮겨 다니며 파는 방식의 사고유형을 일컫는다. 수평적 사고에 강하면 유연성과 다양성이 높은 문화가 발전하기 용이하나 변화가 쉽게 이루어져 전통의 단절이나 전문성을 높이는 데에는 불리한 점이 있다.
일본은 한국과 다르다. 일본에는 이런 덤벙문화가 없다. 검박하고 간결한 삶을 추구하는 센리큐식의 문화가 비슷하게 보이지만 일본 특유의 엄격한 절차와 진지함이 깔려있어 많이 다르다. 보성덤벙, 일본 말로는 호조고비키라고 하는, 덤벙덤벙 만든 조선의 막사발이 일본에서 선호된 적이 있지만 덤벙문화의 자연주의적 측면만을 좋아했던 것이지 덤벙문화 전체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덤벙문화는 자연과 운명을 거스르지 말 것이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너무 애쓰지도 말라고 하지만 일본은 숙명적으로 자연과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태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예컨대 일본유교의 이원론이 그렇다. 유교의 여러 핵심 가치들은 천명天命론에서 나온다.
천명의 요체는 사람들의 태어날 때의 신분이다. 신분은 하늘에서 정해준 것이므로 한국에서는 이 신분체계를 중시했다. 신분의 결정요소는 혈연일 수밖에 없으니 혈연 역시 절대시 했다. 과거시험제 등 신분상승을 위한 나름의 장치가 있었지만 혈연이 결정해준 신분의 테두리 안에서만 작동하는 장치였다.
일본유교에서도 천명을 중시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은 아니었다. 인간이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믿었는데 혈연마저도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양자제도가 그런 노력의 사례다. 아들이 없을 경우 사위를 양자로 삼아 대를 잇게 하는 것이 서양자 제도다.
한국에도 양자입양이 가능했지만 거의 혈족 내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니 일본과 다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후지와라 가문에 양자로 들어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 유교의 이원론이란 큰 틀에서는 천명을 중시하되 각론에서는 인간이 알아서 해도 된다는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싶다.
일본 유교의 이원론적 사고와 별 관련 없을 것 같은 한국의 덤벙문화는 이 대목에서 커다란 대비를 이룬다. 한국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문화에서는 노력은 하되 일정한 지점에 이르면 천명 혹은 운명이라 생각하고 그 결과를 받아 들인다. ‘최선을 다했으니 미련은 없다’와 같은 식의 자위를 곁들이기도 한다. 일본이라고 다르지는 않지만 이 지점이 덤벙문화보다 더 뒤로 지연되어 나타난다.
이 지연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는데 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주는 미진함, 죄책감, 충만감의 결여 등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일본인들을 때로는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전사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집요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런 태도에 일본 특유의 내향성이 더해진 것이 일본의 심화형 문화다. 패전 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심화형 문화가 탄생시킨 정밀한 제조업이 있었고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의 힘도 이런 태도가 배경에 있기 때문이다. 전문성과 고도화에 능한 심화형 문화는 수평형 문화와 달리 유연성이 부족한 법이다. 정보화 사회에 들어 주춤한 모습을 보이는 것의 이면에는 이 심화형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이원론적 문화를 갖게 배경에는 아마도 천재지변이 많은 환경이 있지 않을 까 싶다. 천재지변을 머리로 이해하고 무기력감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재난을 피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이런 믿음에서 파생된 여러 믿음이 있는데 예컨대 천견설이라 해서 지진은 지도층에 내리는 하늘의 경고라는 믿음이 있었다. 지진이라는 재해의 원인이 인간에게 있다는 말이고 그러니 해결책도 인간이 노력하고 고치면 찾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원론의 시작이 이 지점일지 모른다. 일본인들의 성실함과 끈질김, 혹은 심화형 문화의 씨앗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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