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의 참치회를 집어 와사비(고추냉이)와 간장을 묻힌 후 입에 넣는다. 서서히 입안에 참치와 간장 그리고 고추냉이의 맛과 향이 퍼지기 시작한다. 지그시 눈을 감고 온 신경을 혀와 코에 집중하자 첫 맛과 향의 뒤에 숨어있던, 청정한 바다를 헤엄치던 참치의 기운과 고추냉이의 뒷맛이 조화를 이루며 멋진 앙상블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이 앙상블을 들으며 혀의 미각신경을 극도로 예리하게 벼리다 보면 참치와 고추냉이는 파도와 갈매기 그리고 냉이밭을 지나던 산들바람과 벌과 나비의 이야기까지 들려준다. <초밥왕>이라는 만화에서 본 듯한 일본인들의 탐미적 모습을 상상한 것이다.
일본 문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탐미주의다. 그런데 세상에 아름다운 것 혹은 맛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던가? 모든 사람이 탐미적일텐데 왜 일본인에게만 유독 탐미적이라는 평가를 할까? 심리학적 이유가 있다. 먼저 우리의 감각이 일하는 방식을 알아야 한다. 복잡한 과정이지만 아주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시각을 중심으로 설명하겠다. 눈으로 들어온 빛은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쳐 대뇌시각피질(뒤통수 쪽에 있음)에 도달한다. 여기까지를 지각(Perception)과정이라고 한다. 지각과정에서는 몇 번의 변환을 거치기는 하지만, 눈으로 들어온 빛이 갖고 있는 물리적 특징에 대한 정보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는 시각 이외의 청각, 미각 등 다른 감각기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다만 도착하는 최종 대뇌의 부위가 다를 뿐이다. 예컨대 청각신호는 대뇌의 측두엽 쪽에 도착한다.
대뇌에 도착한 빛 혹은 청각신호는 대뇌의 여러 영역으로 전파되면서 기억 속에 있던 내용과 대조, 비교, 추론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하여 완전한 대상 인식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을 인지Cognition과정이라고 한다.
꽃을 본다고 하자. 꽃과 잎 그리고 줄기에서 반사된 빛의 파장, 밝기변화의 양상과 윤곽, 위치 등에 대한 정보가 지각과정에서 처리되고 이후 대뇌피질에서 꽃의 종류와 발육상태의 판단, 꽃과 관련된 기억 등이 일어나는 데 이를 인지과정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보면 심미적 판단은 지각과 인지과정까지 전부 거쳐야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지각과정에서 심미적 인식이 거의 결정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둥글고 빨갛고 익은 사과와 녹색 잎을 보고 탐스럽고 예쁘다라고 느꼈다면 그 느낌은 당연히 인지과정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흠집 하나 없이 둥근 형태와 빨강과 녹색의 색감은 지각과정에서 결정되며 인지과정에서 추가되는 것이 없어도 대뇌는 심미적 판단을 할 수 있다. 물론 ‘빨간것을 보니 잘 익은 것 같군’과 같은 지식이나 기억과 같은 인지적 판단이 추가되어 심미적 판단을 더 풍요롭게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심미적 판단은 가능하다.
앞서 예로 든 초밥을 먹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고추냉이의 독특한 맛과 향은 미각이 감지한 냉이의 화학적 성분에 의해 결정된다. 지각과정에서 결정된다는 말이고 인지과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만약 ‘이것은 설탕이다. 그래서 맵지 않다’라고 자기 최면을 걸어 성공한다면 이는 인지과정이 지각과정을 압도한 셈이다.
고추냉이의 향과 맛에서 이슬과 바람 그리고 햇빛을 받으며 싱싱하고 건강하게 성장한 과정을 상상한다면 혹은 대양을 헤엄치던 물고기의 생명을 느낀다면 이 또한 인지과정에서 일어나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우리가 느끼는 시각적, 청각적, 미각적 아름다움은 지각과정에서 결정되는 것이 있고 인지과정에서 결정되는 것이 있다. 예컨대 아름다운 색감, 균형감, 형태감, 질감 등은 지각과정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학자에 따라 지각과정과 인지과정의 경계를 달리 보는 지점이 있기는 하지만 크게 보면 이렇게 구분해도 무방하다. 이와 달리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며 고통과 숭고미를 경험한다면 인지과정에서 결정된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탐미주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자. 우리가 탐미적이라고 할 때에는 지각과정에서 결정되는 아름다움, 다시 말해 감각적 아름다움 중시 경향이 강할 때다.
일본 문화, 특히 시각예술분야를 볼 때 매우 감각적이라는 인상을 자주 받는다. 일본 음식은 눈으로 먹는다는 말이 있다. 그 만큼 색감이나 질감이 곱다. 감각적이다. 수평, 수직이 정확하고 기하학적 규칙성이 돋보이는 일본의 건축물은 커다란 감각적 만족감을 준다. 일본의 산수화는 한, 중의 산수화에서 중시하는 문인적 이상향 보다 풍경의 윤곽선과 네모난 그림 틀이 만나 이루는 구성미에 더 중점을 둔다. 셋슈 도요(雪舟等楊. 파묵법을 사용한 수묵화로 잘 알려진 무로마치시대 산종 승려이자 화가)의 산수화가 그런 사례의 하나다. 관능미 넘치는 우키요에나 20세기초 일본 문학은 또 어떤가?
일본문화의 한 가지 특징으로 탐미주의를 꼽는 것은 이런 점에서 전혀 과하지 않다. 그렇다면 왜 일본문화에는 탐미주의가 유독 강할까? 몇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내향성이다. 왜 내향성인지는 초두에 그린 생선회를 음미하는 모습에서 이미 설명한 셈이다. 외부의 자극 그리고 자극과 자극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지 않고 눈을 감아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내부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자극의 변화에 집중한다. 티끌 하나 차이를 감지하기 위해 온 신경을 벼리고 벼린다. 스테이크를 먹으며 와인을 곁들여 두 맛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또다른 맛의 향연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생선들 고유의 맛을 느끼기 위해 맛이 약한 생선부터 순서대로 먹는다. 이렇게 감각에 집중하는 과정은 자신의 내부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일본인의 내향성에서 파생된 또 다른 문화가 탐미주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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