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 여행을 다녀온 지인이 <시로이고히비토(白い恋人)>라는 유명한 과자를 선물로 들고 왔다. 한입 먹어보니 여전한 단 맛에 예전 도쿄에 머물던 기억이 줄줄이 소환된다. 미각기억과 같은 원시감각기(심리학에서는 시각이 가장 고등한 감각기라고 여김)는 기
필자는 경제를 잘 모른다. 일상 생활하고 노후를 설계하는데 필요한 정도의 경제지식만 갖고 산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일본의 부동산 버블이 꺼진 후 겪어야 했던 ‘잃어버린 30년’ 등의 이야기 정도는 알고 있다. 그 원인은 다르겠지만 일본과 비슷하게 부동산 거품이니 급격
탐미적 문화의 배경에는 감각적 사유, 풀어 말해 감각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즉물적 경험을 사유의 재료로 선호하는 기질이 있다고 암시한 적이 있다. 심미적 생활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생활 전반에 걸쳐 감각적 사유를 중시한다.이 점에서는 일본과 중국이 비슷
일본에는 ‘재일코리안 변호사협회(LAZAK: Lawyers Association of ZAINICHI Koreans, 2001년 5월 설립, 이하 ‘LAZAK’이라 함)’라는 단체가 있다. 일본에 사는 ‘재일코리안’ 출신의 변호사들의 단체이다. 여기서 ‘재일코리안’이란
일본 문화의 중요한 특징으로 탐미주의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와 결이 다른 문화도 일본에 존재한다. 탐미적이라는 것은 감각중심적이라는 말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는데 감각을 넘어서는, 인지적 양식에 해당하는 가 일본 미술에서 종종 발견되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덤벙문화와 강박문화의 길항이다. 연재를 시작하며 이야기 했듯이 한 국가의 전체문화는 하위문화들 간의 밀고 당기는 관계 속에서 바라보아야 문화의 다면적인 특징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그런 관계 들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일본의 크지 않은 기업에서 10년간 근무한 한국인 A씨는, 고국에 계신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사정으로 한국으로 돌아가야해서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이 회사에서 10년이나 일했으니 어느 정도 두둑한 퇴직금을 받을 것도 기대하였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퇴직금을 지급할
한 점의 참치회를 집어 와사비(고추냉이)와 간장을 묻힌 후 입에 넣는다. 서서히 입안에 참치와 간장 그리고 고추냉이의 맛과 향이 퍼지기 시작한다. 지그시 눈을 감고 온 신경을 혀와 코에 집중하자 첫 맛과 향의 뒤에 숨어있던, 청정한 바다를 헤엄치던 참치의 기운과 고추냉
한중일의 사찰 입구에는 대개 사천왕상 아니면 인왕상이 지키고 서 있다. 대체로 부처님의 수행을 방해하는 생령이라고 하는 악귀들을 발로 짓밟고 서 있는 모습인데, 그렇게 하여 부처님의 수행을 돕는 존재다. 발 아래 깔린 생령들은 괴로움에 몸부림 치고 있다. 생령들은 원래
필자의 나이 탓일까? 주변에 회사를 정년퇴임하는 지인들이 늘어 나고 있다. 보기에 너무도 건강하고 아직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는데 단지 정년이 되었다는 이유로 회사를 나가야 하는 것이다. 한편, 나이와는 상관없이 현역으로 열심히 일하는 분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법에서
일본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최고의 우키요에 작가 호쿠사이(葛飾北斎)는 장수했다. 90세가 되어 기력도 쇠하고 죽음이 목전에 왔음을 느낀 호쿠사이는 “몇 년만 더 시간이 있다면 그림이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텐데”하며 안타까워했단다. 도쿄에서 호쿠사이전을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법률체계는 일본으로부터 대륙법계의 근대 법률체계를 계수한 것이다. 따라서 법률체계 면에서 보면 일본과 상당히 비슷하다. 하지만 법률이란 그 나라의 사회・문화의 총결집체이기에, 아무리 같은 법률체계에서 출발하였다 하더라도 이를 적용하고
지난 번 글에 이어 통제감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일본인들은 통제감을 얻기 위해 축소지향과 반대의 지향성을 갖기도 한다. 바로 확장이다. 바다에 떠 있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깊이와 방향을 알 수 없는 망망대해에서 빠른 물살과 거대한 파도까지 친다면 우리의 통제감은 절망적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기 몇 년 전, 중국을 여행할 때의 일이다. 북경의 어느 공원을 둘러보는데 5, 60대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피켓이나 뭔가가 달린 우산을 들고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엇이 달려 있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자신들의 미혼 자녀들의 키,
필자가 처음 일본에 체재한 것은 2000년 3월부터 1년간으로, 와세다대학 법학연구과(우리의 법학과 대학원) 객원연구원으로 있었던 시기였다. 당시 한국은 1997년 말의 IMF 외환위기 사태를 겪고, IMF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 요구를 수용하여 상법 회사편(이하, 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