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한곳만 보고 전철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도쿄 사이타마현의 사야마(狭山) 자연공원. 따뜻한 주황빛의 저녁놀을 기대하며 일몰 시간을 알아보고 이동하는 시간까지 계산하고 나서 출발했다.
철도회사 세이부전철은 다른 전철과 다르게 귀엽게 생겼다. 열차 칸이 적어서 그리 길지도 않고 역의 플랫폼도 꽤 아기자기하다. 유동 인구가 많지 않은 곳들을 달려서 그런가. 그래도 전철 이용률이 높은 일본이라서 통근 시간에는 사람이 붐빌 수도 있을 것 같다. 필자는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전철을 타는 것에 큰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큰 창문으로 바깥 풍경을 보는 것도 읽기도 어려운 흥미로운 이름을 가진 역에 들리는 것도 철도의 나라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다. 이번 글에는 전철을 타고 이동하면서 느꼈던 필자의 생각과 시선을 글로 써 봤다.

  만연한 가을이라 걷기에 좋은 날씨이다. 살짝 경사진 골목길을 걸어 올라간다. 이곳은 도쿄 도심과 떨어져 있어 한적한 모습이었다. 골목을 따라 세이부야마구치선(西武山口線)으로 환승을 하러 간다. 갈아타기 위해 조금 떨어져 있는 역으로 가는 길은 예상치 못했던 풍경을 맞을 수 있게 한다. 단풍이 든 나무 한 그루가 건강하게 서 있는 모습이었고 채도를 달리한 금색의 단풍들을 보니 가을이 새롭게 보였다. 새로운 장소에서는 아는 계절도 왠지 다르게 느껴지는 법이다.


세이부 철도의 야마구치선, 다마코역(多摩湖駅）이다. 개찰구를 통과하고 전철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과거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과거에도 이렇게 무성한 풀이 자랐을까라고 생각하며 플랫폼의 역사를 생각해 본다. 야마구치선은 약 100년을 걸친 복잡한 역사가 존재하는데 주변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이름도 몇 번이나 바뀌었다고 한다. 또한 이 역은 세이부철도의 92개의 역 중 84위로 해마다 이용자가 감소하고 있는 역이다. 이용자의 감소라는 말이 이제는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 봤다. 이곳의 역이 활기를 띠었을 때의 모습을. 사람들 저마다 목적지를 가지고 이 역을 찾았을 그 모습을. 이곳에서 전철을 기다리는 손님은 필자 외에 2명뿐이었다.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된다. 그리고 같은 곳을 향해 간다는 생각에 약간의 두근거림도 느껴졌다.


  전철은 4칸으로 이어져 있다. 한 칸의 크기가 서울 지하철 한 칸의 3분의 1 정도려나. 전철에 올라 자리를 보았는데 평소와는 다른 좌석이 눈에 띄었다. 오손도손 마주 보며 앉을 수 있는 전철. 좌석만 보면 기차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이 선의 정차역은 단 3개뿐이다. 필자는 첫 번째 역인 다마코역에서 승차하여 마지막 역인 세이부큐조마에역(西武球場前駅)에서 내렸다. 그렇게 기점에서 종점까지 약 4km로 10분 정도 소요된다. 전철을 타고 가다 보면 새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두 번째 역의 세이부유엔치역(西武遊園地駅）이다. 유원지 입구와 역이 이어져 있어 역 플랫폼 자체가 유원지의 입구처럼 보인다.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아 썰렁해 보였지만 사이타마현에서 유명한 유원지라고 한다. 멀리서도 보이는 이곳의 큰 관람차가 이 지역의 백미인 것 같다. 그렇게 전철은 큰 창으로 밖을 훤히 내다보여 주며 빠르게 달렸다.


  사야마 자연공원에 도착했다. 저 계단을 올라가 또 다른 풍경을 얼른 보고 싶다. 노을을 보러 왔는데 못 보게 되면 너무 아쉽지 않은가. 시간을 맞춰 이곳에 온 것을 소용없는 일로 만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계단을 오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큰 소리는 나지 않았다. 정말 조용했다. 마치 미술관에서 조용히 작품을 감상하듯 저마다의 에티켓을 지킨다. 다들 별다른 소리를 내지 않았다. 걷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 등 각자의 취향이 담긴 무언가를 하고 있다. 필자도 큰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마을을 둘러보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곳에서 살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살지 않는 곳을 방문할 때면 이런 점이 늘 아쉽다. 어쩔 수 없지만 이곳의 풍경은 매일 똑같지 않을 것이고 시시각각 변하는 이곳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 아쉬운 발걸음으로 또 오겠다고 다짐도 해본다. 그런 마음에 조금은 이곳의 주민들이 부러웠다. 적당히 높게 위치한 잔잔한 이 공원을 매일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이 공원은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고 한다. 살짝 외진 곳에 위치했기 때문에 튼튼한 자전거를 타고 들렀다 가기에 최적인 공간이다.

  사야마 자연공원에 위치한 사야마 호수. 이 호수를 사이로 저 멀리 후지산이 보인다. 이곳에서 후지산까지 약 150km 떨어져 있다. 뾰족하지 않은 독특한 산 정상이 후지산임을 한눈에 알아보게 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이곳에서 보이는 후지산은 더 선명하고 멋있게 보이던데. 해 질 녘 때라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모습이다. 노을과 후지산을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이곳 만의 비밀 병기이지 않을까. 점잖고 조용한 공원의 분위기 때문에 지금까지 보았던 노을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노을을 보는 유명한 장소를 여러 군데 가 보았지만 여기만큼 잔잔하고 부드러운 빛의 노을은 처음이었다. 해가 지는 것을 눈으로 관찰한다. 보통은 시간의 변화로 노을이 지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새삼 자연이 주는 세심한 변화를 느꼈다. 노을이 주는 따스함으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시간이었다.

(기사 작성 : 청년기자단 전민지 기자)
*본 기사는 JK-Daily 제 1기 청년기자단에 의해 작성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