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의 사찰 입구에는 대개 사천왕상 아니면 인왕상이 지키고 서 있다. 대체로 부처님의 수행을 방해하는 생령이라고 하는 악귀들을 발로 짓밟고 서 있는 모습인데, 그렇게 하여 부처님의 수행을 돕는 존재다. 발 아래 깔린 생령들은 괴로움에 몸부림 치고 있다. 생령들은 원래 사악한 존재인 데다 고통에 일그러지기까지 했으니 흉한 모습인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의 생령들은 그 모습이 상징적인 수준에서 표현되어 있을 뿐 그다지 혐오스럽지는 않다. 생생하지도 정교하지도 않기 때문인데 말 그대로 조각다울 뿐이다.
그런데 일본의 생령들은 대개 나무 재질을 잊을 정도로 정교하며 징그러울 정도로 생생하다. 고통 속에서도 표독한 성깔을 부리는 모습이 실감나는 것들이 많다. 이런 차이점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표현력이나 관찰력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중국과 한국의 미술품 전반을 보면 관찰력과 표현력이 매우 우수하다. 산수화나 초상화에만 국한하면 한·중의 표현력이 일본보다 더 낫고 불교 조각에서도 윈난성 공죽사의 오백나한 상 등 사실성과 정교함이 대단한 것이 많다.
그런데 왜 인왕상과 생령조각에서는 일본 것이 한·중 것 보다 더 생생하고 정교할까. 물론 일본에는 다루기 쉬운 나무로 만든 조각이 많기는 하다. 다만 한국에도 목조가 꽤 있지만 그다지 정교한 맛은 없다. 그러니 재질 때문은 아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일본 미술의 다른 특징들에서 찾을 수 있다.
언젠가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우에노 국립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지옥초지>, <아귀초지> 등 여러 문헌에는 괴이하고 생생한 요물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 생김생김을 만들어 낸 상상력에 감탄할 정도로 징그럽고 생생하다. 한편으로는 우리나 중국처럼 적당한 수준에서 묘사하고 넘어가도 될 것을 저렇게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눈앞에 들이미는 심리는 무엇일까 하는 점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의 강박증을 의심하기도 했지만 실마리를 찾은 것은 그들의 정원에서다.
정원 가운데에서도 젠(禪)정원이라고 불리는 가레산스이(枯山水) 양식의 정원이다. 가레산스이는 물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돌과 모래 등으로 산수 풍경을 표현하는 정원양식이다. 교토 료안지에 있는 방장정원이 특히 유명한데 잔돌을 갈고리로 긁어 만든 수평하고 곡선적인 이랑들은 파도를 암시한단다. 선승들은 참선을 할 때 이 정원을 보며 바다와 파도가 부딪히는 섬들을 상상하며 잡념이 들어설 자리를 없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바다일까? 나무 한 그루, 홀로 선 바위 하나여도 잡념을 없앨 화두로는 충분했을 것 같은데...
섬나라였기 때문일 수 있다. 바다와 떨어질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했을 일본인들에게 바다는 한편으로는 먹을 것을 공급하는 고마운 곳이지만 때로는 삶을 앗아가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동안 태풍, 해일, 거센 파도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사라져갔을까. 한편으로는 경외롭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의 대상인 바다의 모형을 만들어 놓고 안전한 육지에서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상상을 하는 것은 그 무엇과 견줄 수 없는 복잡다단한 감흥을 일본인들에게 주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참선에 필수불가결한 고도의 집중력을 높이고 유지하기 쉬웠을 것이다.
생령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정원으로 건너뛰니 좀 난데없다 여기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생령이나 요괴의 생생하고 공포스러운 모습과 공포스러운 바다를 모형화한 젠정원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미적 거리라는 인지작용이다.
미적 거리는 벌로우 E. Bullough 등이 사용한 개념으로 어떤 대상으로부터 감상자 자신을 분리시켜 무관심한 상태일 때 감성적 감흥을 얻을 수 있고 이 때의 분리를 미적 혹은 심리적 거리라고 한다.
심리적 거리가 확보되어 있을 때, 다시 말해 심리적 거리를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을 때에는 대상의 모습이 생생할수록 미적 감흥이 커진다. 예컨대 우리 안에 갇혀있는 맹수는 심리적 거리가 확보된 상태이기 때문에 맹수의 모습과 행동이 생생하고 확연할수록 감흥도 커진다.
심리적 거리란 개념을 생령이나 정원에 적용하면 나무로 만든 조각에 불과해 우리를 해칠 리 없고 잔돌을 깔아 갈고리로 긁어 만든 바다니 빠지거나 파도에 휩쓸릴 일이 없어 철없는 아이가 아닌 이상 누구나 쉽게 심리적 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러니 생령이나 바다의 모습이 실감 나거나 실제 같은 상상력을 발휘하기 쉬울 때 감흥은 커진다. 궁금증이 거의 풀린 것 같다.
남은 궁금증은 왜 일본에서만 심리적 거리가 더 중요한가 하는 문제다. 두 가지 요인이 떠오른다. 하나는 일본의 강한 탐미적 성향이고 다른 하나는 내향성이다. 나는 일본의 장인 정신이나 심화형 문화의 뿌리에 탐미적 성향이 있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자. 여기서는 내향성 하나만 잠깐 짚어보자. 내향적인 사람은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이 약하다. 이런 특징 때문에 일본은 스트레스를 가급적 피하는 방향으로 문화가 형성되는데 타인에 대한 배려를 중시하고 질서와 양보를 강조하는 문화가 그런 사례의 하나다. 혐오스러운 존재 역시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의 하나인데 생령이 그렇다. 내향적이어서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이 약할수록 심리적 거리는 더 간절해지게 된다. 심리적 거리가 이미 확보되어 있다면 대상이 혐오스럽고 무서울수록 감성적 감흥은 커지게 된다. 감성적 감흥이 클수록 내향적 개인이 평소에 쌓아둔 스트레스는 많이 해소된다. 이 스트레스를 미술심리학자 크라이틀러 H. Kreitler는 잔여residual 긴장 이라고 했다. 생령조각을 통해 본 일본 문화의 한 가지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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