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역을 오래도록, 구석구석 돌아볼 기회가 있다면 사가현처럼 둘러보고 싶다. 규슈 올레길도 살짝 걸어보고, 온천에 몸도 담가 보고, 맛깔스러운 음식도 맛보았다. 역사와 문화, 체험, 맛까지 모두 경험했음에도 아직 사가현의 소도시에는 눈에 담아야 할 여행지가 많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퍼지기 전에 다녀오길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도, 뜨거운 햇빛이 쏟아지던 사가현의 작은 도시 풍경이 아른아른 그리워진다. 오래된 건축물, 달고 부드러운 사케의 맛, 아기자기한 기차역은 다시금 돌아가서 경험하고 싶다.

시간 여행, 히젠하마역 가야부키야네 집락지



일본식 기와가 얹어진 지붕, 색이 바랜 나무 벽과 양철 차양. 척 보기에도 긴 시간을 가늠하게 만드는 히젠나나우라역이 지나가던 나의 시선을 잡아간다. 아직도 기차가 오고 가는 역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새것의 신선함이 아름다울 때도 있지만, 오래된 멋이 주는 고풍스러움이 그리울 때도 많다. 그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장소가 아닐는지. 기차역을 보는 것만으로 이다음에 향하는 장소가 어떤 풍경을 전할지 예상하게 만든다.

바로 옆에는 히젠하마역이 있다. 이곳을 방문하게 된 이유는 가야부키야네 집락지 때문. 가야부키는 짚, 억새 등으로 만든 일본의 전통 초가집이다. 한국의 초가집과 달리 두텁게 얹어서 만든 지붕은 새 둥지를 연상하게 만든다. 마을을 걷다 보면 가야부키가 드문드문 서 있다. 옛날 전통 방식으로 지은 건물임에도 다른 건물과 어우러지는 모습이 진귀하다.

이처럼 두툼한 지붕이라면 비가 샐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겠다. 가야부키 건물 내부도 쓱 둘러볼 수 있다. 누군가 사는 것은 아닌지라 텅 비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켜켜이 쌓여 있는 시간으로 안이 꽉 채워진 기분이랄까. 일본 전역에 기와 같은 가야부키 집락지가 꽤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은 일반 주택가와 어우러져 있어서일까, 그 분위기가 독특하게 다가온다.


은은한 술향기에 취해, 하마슈쿠 양조장 거리

골목에서 술 익어가는 향기가 불어올 것만 같은 하마슈쿠 양조장 거리에 들렀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지독한 더위에 거리는 한산했지만, 그래서 더 조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술을 즐기는 여행자에게 이와 같은 양조장 거리는 그저 반가운 장소. 히젠야마역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소요되는 곳이니 방문하기에 부담되는 거리도 아니다. 게다가 긴 직선의 골목 좌우에 옛 일본 전통 가옥이 줄줄이 이어지는 모습에 걷기만 해도 여행지를 관광하는 기분이 든다.

거리를 이루는 건물 대부분이 일본 술을 빚는 양조장이다. 술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더라도 흥미가 가는 양조장에 들어서 여러 종류의 사케 맛을 보거나 양조장 견학을 할 수도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매대에 줄지어 서 있는 사케들이 보인다. 대화가 통하지 않더라도 맛을 보며 술과의 대화는 가능하니 부담은 없다. 오히려 술로 가득한 장소에서 술향을 음미하는 시간이 만족스러울 뿐.

한곳씩 들러서 맛만 보아도 거리 끝에 도달했을 땐 살풋 취해있을 수도 있겠다. 게다가 차갑게 식힌 사케는 더위 지친 몸에 꿀처럼 달게 들어간다. 사케 특유의 부드러운 목 넘김에 반해 빈손으로 들어갔다가 양손 가득 술병을 쥐고 나올지도 모른다.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술부터 가볍게 선물용으로 살만한 사케들도 많이 판매한다. 술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기념품까지 구입할 수 있으니 문을 활짝 열어둔 가게를 둘러보며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우신을 모시는 유토쿠이나리 신사



일본의 이나리 신사 중 유명한 곳은 3개다. 이바라키의 가시마 이나리 신사, 교토의 후시미 이나리 신사, 그리고 사가의 유토쿠 이나리 신사까지. 이나리는 여우의 모습을 한 신으로 쌀, 농업, 성공의 신이라고 한다. 신사 입구에 입에 천을 물고 있는 거대한 여우 동상이 서 있다. 규모가 꽤 큰 신사라 그런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왼쪽의 계단을 따라 쭉 올라가 고지대에 있는 장소까지 올라가야 한다.

높아 보이기는 하지만 어린아이도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다. 조금만 가면 붉은색 토리이가 줄지어 서서 장관을 이루는 길이 보인다. 물론 교토의 후시미 이나리 신사에 비해서는 토리이 길이 짧긴 하지만 우측에 보이는 마을의 전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굉장히 아름답다. 한가롭고 평화로운 모습에 올라오느라 거칠어진 숨도 잔잔하게 사그라지는 기분. 그리고 그 옆으로는 경내가 내려다보인다. 이파리가 흔들리는 바람 소리와 어우러진 모습에 조용히 감동하게 된다.

산과 숲에 둘러싸여 있는 붉은색 신사 건물의 조화가 아름답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태양 덕분에 빛이 닿는 곳이 모두 황금색으로 반짝인다. 주말이면 인파로 바글바글한다던데, 운이 좋게도 느긋하게 경내를 돌아볼 수 있었다.

글 | 사진 : 엄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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