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모두가 주연인 한국인


필자는 경제를 잘 모른다. 일상 생활하고 노후를 설계하는데 필요한 정도의 경제지식만 갖고 산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일본의 부동산 버블이 꺼진 후 겪어야 했던 ‘잃어버린 30년’ 등의 이야기 정도는 알고 있다. 그 원인은 다르겠지만 일본과 비슷하게 부동산 거품이니 급격한 고령화, 출생률 저하가 한국부동산, 나아가 한국 경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도 귀담아 듣고 있다.


플라자 합의 이후 연일 최고점을 찍던 일본 부동산 가격이 반의 반 토막이 났다는 일본에서는 부동산을 투자의 수단으로 보는 사람은 극소수 재력가나 외국인들뿐이라고 한다. 일본인 대부분은 집을 거주의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단 것을 알게 된 것도 최근이다.


한국의 부동산 가격도 국민 소득수준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은 상태다. 갑자기 높아진 금리, 가족구조의 변화 등 환경변화로 대세하락이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전문가들도 점차 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감하는 부동산 상황은 일본과 조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 같다. 정부에서는 이러저러한 부동산경기 부양책을 내놓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솔깃해하며 제2, 제3의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아 부동산을 산다)’을 시도하기도 한다. 쉽게 말해 한국의 부동산 가격의 하락을 일본에 비해 더디게 하는 끈덕진 요인이 작용하는 것 같다.


이 요인이 경제적인 것인지 사회적 혹은 심리적인 것인지는 감조차 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경제를 모르는 입장에서 꼽아보고 싶은 심리적 이유가 하나 있다. 어쩌면 한국인의 ‘주체성 자기인식’이 높은 부동산 가격을 붙잡고 있는 요인의 하나일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누미야 요시유키(犬宮義行)는 <주연들의 나라 한국, 조연들의 나라 일본>에서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의 자기인식을 주체성 자기인식(subjective self)과 대상성 자기인식(objective self)으로 구분했다. 주체성 자기인식은 자신을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반대로 대상성 자기인식은 자신을 수동적으로 영향을 받는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을 일컫는다. 한국인은 일본인에 비해 주체성 자기인식이 강하다는 것이 이누미야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동의하는 한국인이 많다.


그 근거로 한국인은 긍정적 환상(positive illusion)이 강하다는 점을 꼽는다. 긍정적 환상은 자기 자신에게 닥칠 불행한 일의 발생확률을 실제보다 낮춰보는 경향이다. 긍정적 환상은 개인주의적 문화에서 강하지만 주체성 자기인식이 강한 문화에서도 강하다. 이런 이유로 집단주의 성향이 더 강한 한국문화에 주체성자기인식이 강하고 상대적으로 개인주의가 더 강한 일본은 대상성자기인식이 강하다.


주체성 자기인식이 강하면 자기주장이 강하고 남의 일에 ‘감 놔라 대추 놔라’ 참견이 심하다. 반대로 대상성 자기인식이 강한 문화에서는 가급적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고 각자 자기 영역을 지키고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개인주의로 보이는 일본 문화는 개인성이나 개인의 독립성에 대한 존중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대상성 자기인식의 문화와 연관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강한 주체성 자기인식과 연결된 긍정적 환상은 적어도 한국인에게는 ‘나는 영끌을 해도 부동산 상투를 잡지는 않을 거야’ 하는 부정확한 확률적 판단을 하게 해 모험적인 구매를 부추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반면 긍정적 환상이 약한 일본은 고금리로 인한 부동산 시세하락의 여파를 더 과대지각 했을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버블이 신속하게 꺼질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 마련되어 있다는 뜻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경제는 심리’라는 명제가 성립하는 것같다.


<필자> 지상현 교수
- 한성대학교 디자인대학 교수
- 한성대학교 예술대학 학장
- 연세대학교 대학원 심리학과 박사
- 저서 『안타고니즘(한중일의 문화심리학)』(2020)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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