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의 중요한 특징으로 탐미주의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와 결이 다른 문화도 일본에 존재한다. 탐미적이라는 것은 감각중심적이라는 말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는데 감각을 넘어서는, 인지적 양식에 해당하는 <작위 대 비작위의 대비>가 일본 미술에서 종종 발견되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셋슈 도요의 산수화나 직선적인 건축에서 보듯 다소 작위적 구석이 일본 미술에 많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작위적 경향이 일본 미술을 매우 정교하고 섬세하게 만든 동력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벗어난, 작위에 비작위를 더한 미술양식 역시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예컨대 일본 다실에는 테마에자라는 작은 준비실이 딸려 있다. 다실 내에는 꽃 등을 전시할수 있는 도코노마라는 공간도 있다.
테마에자와 다실을 구분하는 칸막이는 나카바시라 혹은 유카미바시라 라고 하는 나무 기둥이 지지하는데 이 기둥으로 자연에 있던 그대로의 굽은 나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도코노마에서도 마찬가지다. 보통 도코바시라라고 하는 주기둥에 굽고 옹이가 튀어나온 나무를 많이 사용한다.
알다시피 일본 건축물은 반듯반듯한 수직 수평선으로 가득하다. 기하학적으로 정교하고 단정한 건물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굽은 나카바시라나 도코바시라는 건물의 전체적 수직, 수평선과 대비를 이루며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런 비작위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도자기에서도 강하다. 소위 미노야키라고 통칭되는 시노야키, 오리베야키 등은 태토의 균열이나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유약 자국 등을 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비작위적 양식이다. 이런 점에서 조선시대의 덤벙기법(지난 회 글 참조)으로 만든 분청사기와 매우 유사한 미학이라고 볼 수 있지만 다른 점이 있다. 예컨대 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만드는 라쿠차완樂茶碗은 일부러 균열이나 패임을 만들어 무심하게 만든 것처럼 꾸민다. 그러니 작위적 비작위라고 불러야 정확하고 덤벙기법과 다른 대목이다.
일본에서는 이런 양식적 특징을 일컬어 불균형의 미학 혹은 상처의 미학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매우 정확한 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한중일 각국의 전체 문화 속에서 이런 양식특징이 암시하는 바를 파악 하자면 작위 대 비작위의 대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편리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는 도코바시라나 유카미바시라와 비교할 수 있는 건축양식이 있다. 도랑주가 그것인데 나무를 벌목한 후 껍질만 벗겨내 원래의 굽은 형태 그대로 세운 기둥이나 서까래를 말한다. 한국에는 도랑주만을 사용한 건축물이 상당수가 남아 있다. 개심사 심검당, 용인 청룡사, 화엄사 구층암 등이 그것이다. 자연상태 그대로 휘어 올라간 기둥들이 지붕을 떠받치는 모습의 이들은 동화 속 건물처럼 몽환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정신은 천연주의다. 조선시대 말 목재 품귀현상 때문에 생긴 양식이라는 설도 있지만 조선 초기부터 도랑주가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도랑주 등 한국의 미술에서 보는 강한 비작위의 배경에는 분명 천연주의가 있다. 소나무를 흉내내어 건물에 채색을 하는 상록하단上綠下丹의 원칙 등이 있다는 점이 그 증거다. 반면 도코바시라나 유카미 바시라에서 보는 부분적인 비작위의 배후에도 천연주의가 있는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앞서 비작위와 작위의 대비에 주목했었다. 미술양식에서 대비는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대비의 양태만 잘 살펴도 매우 많은 문화적 특징을 파악해낼 수 있다. 미술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의 5할 이상은 대비에 의해 아름다움에 도달한다. 크라이맥스 뒤에 휴지기가 이어지는 음악이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다 해피앤딩으로 끝나는 연극은 심리적 긴장과 이완의 대비를 만든다. 밝음과 어두움 혹은 빨강과 초록의 대비를 이루는 고갱이 그림도 마찬가지다. 이런 대비에 의존해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아름다움에 도달하려 하는데 각기 주로 의존하는 대비의 유형이나 강도가 다르다. 크게 보아 대비는 감각적 대비와 인지적 대비로 구분할 수 있는데 <작위 대비작위의 대비>는 인지적 대비에 해당한다.
인지적 대비는 주로 색상대비나 질감대비 등과 같은 감각적 대비가 극단에 이르렀을 때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나타난다. 앞서 이야기한 연극의 경우와 같이 감각이 아닌 우리의 지식, 경험, 추론 등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대비가 대표적이다. 이 점이 일본 미술에서 보는 작위 대 비작위적 양식이 등장한 이유의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미노야키에서 보는 작위적 비작위의 양식도이와 같은 맥락 속에 있을 것으로 본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일본의 이원론적 문화다. 이원론적 문화에서는 매사를 운명이나 자연에만 의탁하지 않고 일정부분 인간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라쿠차완에서 보는 태토의 균열이나 유약 자국을 인위적으로 더하는 것이 바로 그런 문화에서 나온 미술양식이다.
유카미 바시라나 도코 바시라의 굽은 기둥은 파격적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도랑주에 비하면 매우 조심스럽고 소극적이다. 작위적인 면, 다른 말로는 예술적 의도를 갖고 굽은 나무를 썼으며 목재가 모자라거나 성의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는 이들에게 틀림없이 전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굽은 나무를 적당한 수준에서 절제해 사용해야 하고 다실의 나머지 부분은 기하학적으로 반듯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야 굽은 나무를 사용한 것에 어떤 심미적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쉽게 눈치챌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작위 대 비작위의 대비가 탄생한 것이다. 본사이나 이케바나에서 한 방향으로 삐져 나온 가지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유카미바시라, 미노야키, 이케바나 등에서 보는 <작위 대 비작위>라는 양식은 단순히 미술 양식의 특징 하나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이원론적 삶의 태도 더 나아가 일본의 전체 문화나 습속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의 하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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