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일본과 한국의 법률이야기를 시작하며

  • 강혁 기자
  • 발행 2021-09-07 17:42

필자가 일본과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한국의 로펌 소속 변호사들은 유학 기회가 주어지면 통상 미국을 가는데, 한 선배(지금은 정치권에 계신다)의 영향으로 미국이 아닌 다른 곳을 찾다가 일본을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2000년 2월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연구과의 연구원으로 1년간 좋은 시간을 보내고 귀국을 하였는데, 한국 변호사 중 일본 유학파가 적은 탓인지 일본에서의 사건 의뢰가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본에 사무실을 차리면 대박이 날 것이란 착각(?)을 하게 되었고 2007년 4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2014년 4월까지 일본에서 외국법사무변호사로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마 일본 생활을 가장 많이 한 한국 변호사가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이런 필자가 칼럼 제의를 받고 제가 쓸 수 있는 내용이란 역시 일본과 한국의 법률 문화와 관련한 것이라 생각했다. 법이란 그 나라 문화의 정수이기도 하고 그 나라 국민들 의사의 결집체이기도 하기에, 그 나라의 법률 내용이나 법조 사회를 잘 살펴보면 그 나라의 문화가 보이게 된다. 특히, 일본으로부터 근대법을 계수한 한국이 지금은 얼마나 다른 법률 문화를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JK Daily로부터의 칼럼 의뢰를 오래 생각도 않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일본과 한국의 법률 문화에 대하여 먼저 어떻게 말문을 열까 생각을 했다. 역시, 내가 일본에서 한 경험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

2013년경, 한국의 모 대기업 건설사(A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A사의 대표이사 인감이 찍힌 문서가 위조문서이므로 그 위조범을 형사고소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사안의 간단한 개요는 다음과 같다. 일본인 B가 일본인 C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변제기일이 되어도 갚지 못하자 C에게 독촉을 했다. 그러자 C가 자신이 요즘 모 지역의 리조트 건설 관련 사업을 하는데, 한국의 대기업인 A사가 이 리조트 사업에 투자를 할 것이고, 이 투자금이 들어오면 변제하겠다고 하면서 A사의 ‘투자의향서’를 제시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변제가 없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B가 한국인 지인을 통하여 A사에 확인을 하여 보니, A사는 전혀 모르는 내용이었고, A사 대표이사의 인감도 다른 것이었다. 이에 B가 확인을 하여 보니, C는 이 투자의향서를 일본인 지인 D를 통하여 받아 B에게 제시한 것이었다. 이에 A사가 C 및 D를 사문서위조 및 동행사죄로 고소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안의 경우, 한국에서는 C와 D에 대하여 형사고소장을 내면 수사기관에서 이를 수리하여 피의자들 및 참고인들을 조사하여 실제로 그 사문서를 누가, 어떻게, 왜 위조하였는지 밝혀주고, 범죄행위가 성립하면 기소 절차에 회부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어떨까?

먼저, 일본 경찰은 일반적으로 형사 고소장을 잘 수리하여 주지 않는다. 즉, 일본에서 형사고소장을 제출하면, 경찰은 고소장을 복사한 후 원본은 돌려 주면서 자신들이 움직일 필요가 있는지를 먼저 판단한다. 그런 후 범죄의 입증이 분명하고 자신들이 움직일 만하다고 판단되면 그때 정식으로 고소장을 수리하여 준다. 고소장을 정식 수리하여 준다는 것은 그때부터 경찰의 사건으로 입건하여 조사하여 주겠다는 뜻이고, 이러한 정식 수리한다는 연락을 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빠르면 2주, 늦으면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위 사안의 경우도 역시 고소장을 수리하여 주지 않았고, 내용 검토 후 조사에 착수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하였다. 그 이유는 D가 위 투자의향서를 위조하였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어 경찰이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D가 그것을 위조하였는지 아닌지는 C와 D를 불러 조사하여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인데, D가 이를 위조하였다는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 오지 않으면 조사를 하여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이를 지적하며 항의를 하여도 경찰은 전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럼, C가 위조사문서를 행사한 부분에 대해서라도 조사하여 달라고 하니, 이것 역시 위조된 투자의향서 원본이 없어서 힘들다고 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우리가 투자의향서의 원본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B가 C로부터 제시 받은 투자의향서의 복사본을 가지고 있었고, 그 투자의향서가 위조가 되었다면 당연히 사문서위조 동행사가 될 것인데, 왜 원본이 없어 조사 자체를 못해준다는 것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본의 경찰은 독자적인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수사를 할지 안 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권한이 있다. 그러다 보니 행정편의적으로 흘러, 증거 등이 명확하여 자기들이 움직여야 하는 사건이거나, 움직이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을 만한 사건 등이 아니면 움직여 주지 않는다. 그들이 조금만 조사하면 알 수 있는 것도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 오라고 요구하며, 그것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조사 자체를 하여 주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일본 경찰의 태도는, 우리나라와 같이 민사재판에 필요한 증거를 수집하기 위하여 또는 민사적 해결책보다 더 빠른 해결책을 찾기 위하여 형사고소를 남발하는 행태를 근본적으로 저지하는 효과는 있어 보인다. 그러나 너무 관료적, 행정편의적으로 흘러, 국민의 신체와 재산을 지켜야 하는 경찰의 기본적인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결과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일본 경찰의 태도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그렇게 불만이 많은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수리를 잘 해주지는 않지만(특히, 사기, 횡령 등의 재산적 범죄에 대해서는 거의 형사고소를 하지 않는다), 일단 수리한 사건에 대하여는 철저히 조사해서 범죄자를 단죄한다는 신뢰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실제 일본 형사재판의 유죄율은 99.9% 전후의 추이를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기소된 경우에는 거의 유죄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일본의 사회 분위기가 단지 일본 경찰이 독자적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는 제도로부터 유래하는 것 만은 아닐 것이다. 일본 특유의 사회 분위기, 역사적 배경, 사회 문화가 이러한 일본의 형사제도 관련 문화를 만들었고, 그 하나가 위에서 이야기한 일본 경찰의 태도 및 이에 대한 일본 국민의 태도일 것이다.

앞으로 이 칼럼에서는 이러한 한일간의 법률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일 법률시장의차이, 법률 문화의 차이 등을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차이점들은 어디서 왔는가 등에 대하여 저 나름대로의 의견을 제시하고 싶고, 독자들의 의견도 듣고 싶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가까우면서도 먼 이웃나라 관계’가 아닌 그냥 ‘가까운 나라 관계’인 양국관계가 되게 하는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필자> 박인동 변호사
- 現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 주일 한국기업연합회 법률고문
- (재)한일산업·기술산업협력재단 감사
- 前 일본 동경변호사회 회원 (2007-2014)
- 일본변호사연합회 국제교류위원회 간사 (2008-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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