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가 사는 마을, 사카이미나토

  • 강혁 기자
  • 발행 2021-05-17 13:13

돗토리현의 요괴 마을 ‘사카이미나토’를 아시는지. 소도시만의 매력을 듬뿍 가지고 있는 곳으로, 일본과 한국 여행자 모두에게 꽤 유명한 곳이다.


이 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요나고 기타로 공항’에 내려서 기차를 타면 끝. 요괴 캐릭터가 잔뜩 그려져 있는 사카이미나토 행 열차를 타면 금방 도착한다. 열차의 밖과 안이 온통 독특한 요괴 캐릭터 천지인데, 사카이미나토의 기타로 역에 내려도 똑같다. 요괴 마을에 가고 있음을, 열차에 탄 순간부터 알 수 있다.


열차 안이 요괴 캐릭터로 가득하다.

사카이미나토에 가기 전 이곳이 왜 ‘요괴 마을’로 불리는지 알고 가면 좋다. 바로 일본의 국민 만화 <게게게의 기타로>의 작가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이 만화는 한국에서 치자면 <아기공룡 둘리>나 <검정 고무신>이 되지 않을까. 1965년에 작품 연재를 시작했고, 이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면서 인기 반열에 올랐다. 1968년부터 2009년까지 여러 시즌에 걸쳐 TV에 방영되었다고 하니 그 이 인기가 대단하다.

<게게게의 기타로>가 그려진 사카이미나토행 열차가 역에 도착했다.

내용은 기타로라는 아이와 외눈박이 요괴이자 기타로의 아버지인 ‘타요마’가 나쁜 요괴를 물리치며 사건을 해결한다. 등장하는 요괴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하지만 저마다 귀여우면서도 괴기하고, 또 매력이 있달까. 만화를 본 적 없이 약간의 스토리만 알고 있어도 사카이미나토를 즐기기에 충분하다.



요괴의 길, 미즈키 시게루 로드

미즈키 시게루 로드의 낮

<게게게의 기타로> 만화가의 이름을 따서 지은 ‘미즈키 시게루 로드’는 약 800m 길에 만화에 나오는 요괴 캐릭터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타로와 타마요. 특히 눈알 요괴는 택시, 가로등, 처마 밑과 기념품 가게 등 곳곳에서 시선을 강탈한다. 마치 도시의 마스코트라도 되는 듯 말이다.


미즈키 시게루 로드는 상점 사이에 나 있기 때문에 조각상 외에도 구경거리가 상당하다. 기념품 가게에 들러 다양한 굿즈를 살펴볼 수도 있고, 사케집에서 시음을 하거나 기타로 그림이 그려진 맥주를 선물용으로 사도 좋다. 거대한 눈알이 있는 요괴신사도 있다. 거리가 그리 길지는 않지만, 자꾸만 걸음을 멈추게 하는 요소들이 많아 끝까지 가는데 꽤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

미즈키 시게루 로드의 밤

낮의 미즈키 시게루 로드가 약간 활기차다면 밤은 조금 음산하다. 마을 자체가 어두침침하고 사람이 적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요괴 마을답게 밤이 되면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가로등 불빛이 변한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나는 요괴 그림자. 거리에 커다랗게 <게게게의 기타로> 캐릭터 그림자가 하나둘 튀어나온다. 낮과 밤의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하룻밤을 머물다 가지 않으면 아쉬울 정도다.


<게게게의 기타로>의 시작, 미즈키 시게루 기념관


미즈키 시게루 로드의 끝쪽으로 걸어가면 기념관이 하나 있다. 미즈키 시게루 작가의 일대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건물은 과거에 ‘요정’이었던 곳이라 건물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미즈키 시게루는 5살 때부터 요괴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일본의 요괴와 미신에 관해서 이야기해주었던 유모의 영향이 컸다고. 그때 들었던 이야기가 지금의 <게게게의 기타로>가 되었다. 어릴 적 호기심이 만화로 구현되어 결국 일본 요괴를 다룬 애니메이션의 원조로 평가받고 있으니, 굉장하다.

미즈키 시게루 로드 끝에 기념관이 있다.

젊은 나이에 전쟁에 참여하여 한쪽 팔을 잃었지만, 작가는 유쾌했다. 기념관에 있는 그의 사진은 모두 웃는 모습이다. 비교적 늦은 35살에 만화가로 데뷔하였으며, 전 세계를 떠돌며 세계의 요괴 공부를 하는 학자이기도 했다. 미즈키 시게루 기념관에는 그가 살아온 삶과 작품 세계가 남아 있다. 미즈키 갤러리, 작업실과 요괴광장, 그리고 온갖 요괴들이 전시되어 으스스한 분위기를 내뿜는 요괴 동굴까지. 기념관 특유의 무겁고 진중한 느낌 대신 다양한 요괴와 만화 스토리로 가득해 오히려 공간마다 흥미롭고 유쾌하다.



요괴 카페 게게게의 요괴 낙원, 요괴 빵집 고베 베이커리

요괴 캐릭터가 모여있는 요괴낙원

미즈키 시게루 로드에 왔다면 필수로 방문해서 맛을 봐야 하는 곳이 두 개 있다. 첫 번째는 요괴 카페라 불리는 ‘게게게의 요괴 낙원’. 메인 거리를 벗어나 상점가 뒤쪽에 있기는 하지만 저 멀리서부터 요괴 캐릭터가 잔뜩 보인다.


야외에 깔린 테이블 주변에는 요괴 조각과 각종 포토존이 있어서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각종 기념품과 함께 음료를 판매한다. 이곳의 인기 메뉴는 ‘요괴라떼’. 음료 위에 캐릭터 모양대로 파우더를 뿌려 주기 때문에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미즈키 시게루 로드를 걷다가 잠시 쉬어가기에 제격인 곳이다.

요괴 모양의 빵을 맛볼 수 있는 고베 베이커리

고베 베이커리는 ‘요괴 모양의 빵’을 팔고 있다. 여행지들을 붙잡는 요괴 빵이 유리창에 진열되어 있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종류도 다양해서 하나하나 다 사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가며 고르는 여행자도 보인다. 캐릭터의 특징을 잘 잡아낸 빵은 외형만 독특한 것이 아니라 맛도 좋다. 폭신하고 부드러운 빵과 달달한 팥 등 가볍게 간식으로 먹기에도 딱. 동네 빵집의 푸근하고 친근한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요괴 마을에서의 하루, 온야도 노노 호텔


사카이미나토는 작은 마을이지만 여유롭게 시간을 잡아 구경하고 하룻밤 머물다 가야 할 이유가 존재한다. 미즈키 시게루 로드의 낮과 밤을 모두 걸어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기차역 앞에 현대식 료칸 분위기의 온야도 노노 호텔이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이 호텔에는 천연온천도 있다. 온천하면 일본, 일본 하면 온천이지 않은가.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날아왔는데 온천수에 몸을 담그지 않고 가면 아쉬울 일이다.


객실의 컨디션은 최상이다. 신을 벗고 들어가는 구조라서 오히려 한국 여행자들에겐 더 반갑다. 하얀 침구와 다다미가 서로 어우러져 따스한 분위기도 내준다. 객실에는 온천에서 사용할 수건과 각종 용품이 들어간 바구니가 놓여 있다. 이것을 들고 12층으로 올라가면 멋진 전망을 감상하면서 뜨끈한 물에 몸을 뉘며 천연 온천을 즐기면 된다.


요괴 마을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즐기고, 온천을 하면서 푹 쉬는 것. 이만큼 평화로운 여행도 없을 터. 온천을 끝내고 난 뒤에는 미즈키 시게루 로드에서 사 온 맥주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온야도 노노 호텔의 깔끔한 다다미 스타일의 객실



글│사진 : 엄지희

저작권 : 벡터컴

<저작권자 ⓒ JK Daily,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