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정부, “사도광산 조선인 위령시설은 日 아이디어”


(사진)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의 사도가섬에 위치한 최대 금광 사도광산 전경 (사진 출처: 일본 문화청)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금광 사도광산에 조선인 노동자 위령시설을 설치하자는 방안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뉴시스는 외교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최근 일본 언론에서 보도된 조선인 노동자 위령시설 설치는 일본 내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 중 하나로 이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6일, 세계문화유산 등재 심사를 담당하는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는 사도광산에 대해 추가 자료 제출 시 등재될 가능성이 높은 ‘보류’를 권고했다. 4단계 중 2단계인 ‘보류’ 결정 배경엔 사도광산의 기계화 광산을 뛰어넘는 순도와 세계 최대 규모의 생산량, 높은 굴착·측량 기술이나 정련 기술 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기준인 ‘인류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보이는 건축양식이나 기술’,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에 대한 독특하고 희박한 증거’에 합치한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광산과 관련된 인류의 역사는 16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기계화의 전과 후로 나뉘는데, 기계화 전 수공업 시기 광산으로 세계 최대, 최고 품질 금을 생산한 광산 유적이라는 것이다.

일본 당국은 자료 보완을 요구하는 유네스코의 ‘보류’ 판정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여 현지 지자체와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며 등재 실현을 힘주어 말했다. 사도광산이 위치한 니가타현도 재심사를 앞두고 관련 현민의회를 열고 대책 논의가 분주하다. 

(사진)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의 사도가섬에 위치한 최대 금광 사도광산의 아이카와쓰루시금은산 (사진 출처: 일본 문화청)

한편, 사도광산은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의 사도가섬에 위치한 일본 최대의 금광으로, 1601년 발굴부터 1989년 폐광까지 약 400년의 역사를 지녔다. 1603년 도쿠가와 막부 직할의 사도봉행소가 설치되었고, 이곳에서 생산된 엽전은 에도 막부의 재정을 뒷받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무사 계급의 권위가 지대했던 막부 체제에서 중앙 집권 체제로 나아가는 메이지 시대로 넘어가면서 관영 사도광산이 되었다. 이후 서양인 기술자를 초빙해 기계화 및 근대화를 도모했다. 1989년 3월까지 채굴이 진행된 사도광산은 현재 근대 일본의 광산 산업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변모해 관광지로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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