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때로는 중국까지 포함한 3국의 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란 한 민족이 환경에 적응하며 갖게 된 습속, 인간관, 세계관, 사생관, 그리고 그러한 것을 뒷받침해주는 기질과 같은 유무형의 자산을 뜻한다. 예술, 연예 등과 같은 창작, 실기분야와 무관하지는 않지만 그것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문화를 이야기할 때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첫째 문화에는 여러 층이 있다. 몇 층이 있는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표층과 심층은 분명하다. 역사적 경험은 나름의 독특한 문화를 만든다. 그렇지만 유사한 역사를 경험한 민족들이 모두 동일한 문화를 습득하는 것은 아니다. 엄청난 자연재해가 악착같은 생존주의적 문화를 탄생시킬 수도 있지만 도리어 공동체의식을 강화하고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갖게 할 수도 있다. 이런 차이 가운데 하나를 한일의 유교문화에서 볼 수 있다. 예컨대 두 나라는 유사한 경로를 통해 유교를 익혔지만 일본의 유교는 천명天命만을 중시하는 한국과 달리 천명과 인연因緣을 모두 중시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른 기회에 할 것이다.
하여간 이런 차이가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두 민족 사이에는 유교 이외의, 더 근원적인 차이점이 있다는 점이다. 그 차이가 두 나라의 유교를 다르게 만든다. 그 근원적 차이점은 ‘심층문화’에서 나오는데 심리학적 성격이 강한 ‘감성적(무의식적) 기질’로 표현하거나 더 줄여 기질이라고 해도 된다. 연재될 글에서는 가급적 이 심층문화의 관점에서 독특한 문화적 현상이나 삼국 간의 문화적 차이를 이야기할 것이다. 용어는 문장에 따라 더 매끄러운 표현을 번갈아 쓸 생각이다.
한 민족의 감성적 기질 혹은 기질은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기질은 특정 행동, 물건, 믿음에 대한 선호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예컨대 옷 입는 스타일을 보면 그 사람의 감성적 기질을 알 수 있다. 별다른 선호나 개성을 읽을 수 없는, 너무나도 평범한 옷을 입는다고? 타인의 시선에 무신경하거나 눈에 띄는 것을 두려워하는 기질, 아니면 단순히 미적 센스가 부족한 경우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비슷하게 한 민족의 옛 예술을 들여다보면 그 예술을 만들고 즐겼던 사람들의 감성적 기질을 읽을 수 있다. 감성적 기질은 명시적 역사가 말하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해준다. 이 점에서 가장 유용한 것이 미술품, 특히 민예품이다. 당대의 미적 선호가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문학은 그 속에 배어있는 당대 지배이념이 감성적 기질을 가리고 있고 음악, 특히 중요한 민속음악은 원형 보전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두 번째로 고려해야 할 점은 문화의 역동성이다. 다시 말해 문화는 어떻게 변하고 발전하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정치, 사회, 경제적 요인들과 같은 문화 외적 요인들이 변화의 계기를 제공하지만 심층문화의 역할들도 무시할 수 없다. 표층문화를 조향하는 심층문화는 여러 하위문화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하위문화들이 서로 밀고 당기며 문화의 전체 모습에 변화를 준다. 이를 하위문화들의 역동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때 밀고 당김을 “길항 Antagonism”이라고 하자.
이탈리아 하면 예술을 사랑하고 낭만적이며 낙천적인 문화를 떠올린다. 그런데 이 낙천적인 사람들이 유럽을 지배한 로마제국을 건설했고 제2차세계대전 전범국의 하나였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모습을 어떻게 전체 이탈리아 문화 속으로 통합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이 ‘심층문화의 길항’이다.
낙천적이며 낭만을 즐기는 이탈리아인들에게는 외향적이고 남성적인, 때로 공격적이다 싶을 정도의 적극적인 기질도 있다. 이 두 감성적 기질이 서로 밀고 당기며 이탈리아 문화를 만든다. 남성적 문화가 우세한 맥락에서는 공격적인 플레이로 유명한 프로축구리그 세리에 A를 만들거나 타국을 침략하는 지배욕을 낳기도 했다. 반면 낭만적 문화가 우세할 때에는 곤돌라를 타고 아리아를 부르는 사공을 만들어낸다.
물론 표층문화에서도 길항은 작용한다. 독일은 녹색당, 좌파당, 사민당 등 진보정치의 본산이면서도 ‘독일을 위한 대안AfD’와 같은 극우 정당이나 스킨헤드 족이 큰 지지를 받고 있다. 어떤 감성적 기질(심층문화)이 이런 길항의 터전을 제공하는지 아직 확인할 수 없지만 표층에서는 인권, 환경, 평등을 중시하는 진보문화가 우세하다. 그러나 세상일은 모르는 법.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서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웃나라 중국의 역사를 보면 강력한 중앙집권적 법가의 구심성과 자유방임적인 도가의 원심성이 밀고 당기는 역사적 실험이 있었고 유가는 그 절충점이 된다. 그러나 그 유가의 테두리 속에서 구심성과 원심성은 계속해서 밀고 당기며 중국 역사를 이끌어 왔다. 이렇게 문화의 길항은 전체 문화를 바라보는 유용한 관점이 될 수 있다.
한두 가지 더 소개할 개념이 있지만 향후 필요할 때를 위해 남겨두자. 첫 번째 주제로 일본의 종교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 중이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생각하지 못했지만 오랜 옛부터 정치와 종교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문화에 관한 많은 논의들이 그 관계에 토대를 두고 이루어져 왔다. 비슷한 논의를 여기서 반복할 생각은 없다. 그럴 역량도 없다. 다만 정치와 종교에 관한 그간의 논의에서 다루지 않았던 심층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 뿐이다. 별일 없다면 일본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로 첫 인사를 드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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