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이 이번 7월 10일에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선거 운동 막바지에 터진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피살 사건으로 일본 사회는 크나큰 충격에 휩싸였지만, 이는 보수 세력 집결의 트리거가 되어 (괴한의 범행 동기와는 무관하게) 집권 자민당은 개헌 발의가 가능한 3분의 2인 166석을 훌쩍 넘는 177석 확보하게 되었다. 이에 향후 일본의 개헌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1947년 시행된 후 지금까지 75년이 넘도록 한 번의 개정도 없었던 일본 헌법이 과연 이번에는 개정될 수 있을 것인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이번 글에서는 현행 일본 헌법의 성립 과정과 개헌과 관련한 여러 이슈들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현행 일본국 헌법(이하, ‘일본헌법’)은 알려진 바와 같이 연합군 총사령부(GHQ, General Headquarters) 산하 민정국(GS, Government Section)에서 포츠담 선언(1945년 7월 26일)의 정신에 기반하여, 1946년 2월 5일부터 개정 작업을 시작하여 같은 달 12일(1주일 만)에 완성한 초안에 따라 성립된 것이다. 이렇게 성립된 일본헌법은, ‘천황은 국민의 상징’, ‘주권재민’, ‘전쟁포기(평화주의)’라는 3가지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이로써 일본은 메이지헌법의 전제군주체제인 천황제가 해체되고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가 되고, 전쟁을 포기하는 평화 조항을 가지게 되었다.
GHQ의 일본헌법 개정 초안이 나오게 된 경위 및 성립 과정은 이러하다.
GHQ의 일본 통치는 일본의 근본적인 정치개혁 및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포츠담 선언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에 GHQ는 일본 통치를 시작하면서 일본 정부에 대하여 자체적인 일본헌법 개정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측에서는 포츠담 선언을 수락할 때 국체 보호(즉, 천황주권 보장) 조건을 부탁 해 두었으므로 일본의 국체는 안전할 것이란 희망적인 관측을 하고 있었고, 이에 헌법개정을 가장 먼저 하여야 할 급선무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1945년 10월 GHQ로부터 강한 독촉을 받은 후에야 일본 정부는 자체 일본헌법 개정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같은 달 25일, 당시 국무대신이었던 마츠모토 죠지(松本烝治) 박사(전 동경대 법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헌법문제조사위원회(통칭, 마츠모토 위원회)를 급히 발족하여 총회 6회, 소위원회 15회를 각 개최하여 ‘일본헌법개정안(소위, 마츠모토 안)’을 3개월여 만에 만들어 다음 해인 1946년 2월 2일 GHQ에 제출하였다. 마츠모토 안은 ‘천황주권’의 메이지헌법의 기본 골자와 대동소이한 것으로 GHQ의 의도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이에 GHQ는 일본 정부에 헌법 개정 작업을 맡겨 둘 수 없다고 판단하여, GHQ 산하 민정국(GS)에서 독자적으로 일본헌법 개정안을 급하게 만들게 된 것이다.
GHQ는 자신들의 일본헌법 개정안에 대하여 일본 정부, 정치 지도자 측에서 반발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이에 GHQ에서는 일본 정치 지도자들에게 일본헌법 개정안을 제시하면서 협조를 구했다고 한다. 과연, GHQ는 어떤 내용으로 협조를 구했을까? GHQ의 일본헌법 개정안을 받아 들이지 않으면 천황을 전범으로 처벌하겠다고 협박(?)이라도 했을까? 아니다. 한도 카즈토시(半藤一利) 씨의 ‘쇼와사(昭和史, 하권)’에 의하면, GHQ는 만약 일본 정부, 정치 지도자들이 GHQ의 일본헌법 개정안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직접 일본 국민들에게 일본헌법 개정 내용을 알리고 동의를 얻을 생각이라고 이야기하였다고 한다. GHQ는 무엇을 근거로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일까? 일본 지도층과 일반 국민들 간에는 국가 체제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단 것인가? 만약 당시 GHQ에서 일본 국민들에게 직접 자신들의 일본헌법 개정안을 제시하고 호소를 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에 가정이란 없는 법이지만, 당시 상황에 비추어 짐작해 보면, GHQ의 설득에 공감하는 국민들이 많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면 ‘천황’의 지위는 지금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흥미가 가는 대목이다.
GHQ의 일본헌법 개정안을 받아 든 일본 정치 지도자들은 처음에는 반발하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전승국들의 ‘천황에 전쟁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 동향, GHQ의 강경한 태도 등을 감안하여 마지못해 이를 받아 들이기로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그런데, 당시 메이지헌법에는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천황의 명령, 즉 칙명이 필요하다고 규정(제73조)하고 있었으므로, 만일 천황이 칙명을 발하지 아니한다면 일본헌법 개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천황은 “나는 상징으로도 좋다”며 결단을 내려 주었고, 이로서 일본헌법 개정에 관한 문제는 일단락을 짓게 되었다. 이후 사소한 부분의 손질을 거쳐 의회에서 일본헌법 개정안이 가결되어, 1946년 11월 6일에 공포되었고 다음 해 5월 3일부터 시행되게 되었다.
‘헌법’이란 한 나라의 국가기관의 조직 및 작용에 대한 기본적 원칙과 국민의 기본적 권리∙의무 등을 규정한 근본법으로, 그 국가의 법체계 근간이자 최고위의 법 규범을 말한다.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에 있어 헌법이란 자주적인 국민적 합의가 그 기반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현행 일본헌법은 (물론, 메이지헌법 규정에 따른 헌법개정 절차를 거치기는 하였으나) 점령군인 GHQ의 필요에 의해 급조된 것이라는 태생적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일본 국민들 입장에서는 자존심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일본헌법 제96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헌법 개정 절차는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전체 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개헌안을 발의하고, 이를 국민에게 제안하여 국민투표에서 과반의 찬성을 얻어야 성립하도록 하고 있어, 절차 상으로 상당히 개정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이러다 보니 시행된 지 75년이 지난 지금에도 개정 한 번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근 이러한 일본헌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일본 국내의 여론은 어떠한가?
올해 5월 3일은 일본헌법 시행 75주년을 맞는 ‘헌법기념일’이었다. 이날 NHK가 발표한 여론 조사결과를 보면,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35%, 개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19%로 나타나, 개헌에 찬성하는 사람의 비율이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개헌 찬성 여론은 매년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2018년에 29%, 2019년에 32%, 2021년에 33%, 2022년에 35%으로 증가 추세). 개헌의 필요를 느끼는 이유로 거론한 것은 “일본을 둘러싼 안보 환경의 변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 사람이 57%이고, “국가의 자위권이나 자위대의 존재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23%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개헌의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이유로는 “전쟁 포기를 규정한 일본헌법 제9조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라 대답한 사람이 61%로 가장 많았다.
한편, 일본헌법 제9조, 소위 평화 조항의 개정이 필요한가를 묻는 질문에 개정이 필요하다는 사람이 31%, 필요 없다는 사람이 30%로 거의 동일한 비율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제9조에 관한 개정이 필요하다고 대답한 비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2020년에 26%, 2021년에 28%, 2022년에 31%로 증가 추세). 제9조의 개정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자위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헌법에 확실히 규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 사람이 64%로 가장 많았고, 개정의 필요가 없다고 한 이유에 대해서는 “평화헌법으로서 가장 중요한 조문이기 때문”이라고 답한 사람이 70%로 가장 많았다.
이와 같이 개헌의 찬성하는 비율만큼이나 아직도 많은 일본 국민들은 평화헌법의 가치를 존중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에 많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국민들의 여론을 알고 있어서인지 자민당에서 전면에 내세우는 개헌 항목(소위 ‘개헌 4항목’)은 △일본헌법에 자위대의 존재 규정의 명기 △자연재해 등 긴급사태 대응 △참의원의 합구 해소(각 현(県)별로 최소 1명 참의원 선출 규정) △평생교육 등 교육의 충실화 추구이다. 이 중 핵심은 일본헌법에 자위대의 존재 규정을 명기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일본헌법 제9조가 전쟁을 포기하고 전력을 보유하지 않기로 되어 있음에도 일본은 ‘자위대’란 형태로 사실상 전력을 보유하고 있어, 이와 같은 자위대의 존재가 위헌이라는 비판이 있어 왔기에 이러한 문제에 대한 종지부를 찍자는 의미에 불과해 보인다. 이러한 개헌이 이뤄진다고 일본이 곧바로 군국주의 국가로 탈바꿈하여 주변국을 침략 할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우려는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왜 이런 개헌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이러한 일본의 개헌 움직임에 대하여 주변국인 한국, 북한, 중국 등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다시 말해, 1947년에 시행된 이후, 토씨 하나 안 바뀌고 이어져 온 평화주의의 상징인 일본헌법 제9조가 개정되면, 동북아 지역에 미치는 파급력은 매우 클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중국·러시아·북한의 안보 위협을 명분 삼아 얼마든지 평화헌법의 본질까지 손 댈 수 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개헌을 찬성하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제시한 이유와 같이, “최근의 우크라이나 사태 등 예기치 못한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경우를 대비하여 개헌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들어, 일본이 이런 명분하에 평화 조항을 버리고 군국주의화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고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이러한 우려를 하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국가에서 온전히 자국민들의 의사 합치를 통한 자국 헌법 개정에 대하여 주변 국가에서 왈가왈부 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일본이 국민적 합의로 평화헌법의 가치를 포기하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계제는 아니다. 물론, 예전 군국주의 일본으로부터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본 주변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군국주의에로 회귀’를 우려하는 것도 일리는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일본헌법 제9조는 안전보장이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마련된 조문이 아니라 군사력의 통제라는 과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마련된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평화헌법의 가치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존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한 것 같다. 또 이러한 일본 국민들의 평화주의에 대한 신념이 그리 쉽게 바뀔 것 같지도 않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주변 국가들의 우려는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일본 정가는 개헌움직임으로 분주한 것 같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개헌에 찬성하는 여론이 아직 35% 정도에 그치고 있고 실제 개헌이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로 보인다. 또 자위대의 헌법 명기 관련 개헌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이것이 곧 군국주의에의 회귀가 아닌가라고 과도하게 우려하거나 비난에 열을 올리는 것은 너무 성급한 반응이 아닐까 한다. 이보다는 어떤 논의를 거쳐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주목하되 감정에 휘둘리지는 않는 냉정한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일본 또한 주변 국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국민의 합의만으로 얼마든지 개헌할 수 있다고만 치부하지 말고,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주변 국가들에게 인정 받을 수 있도록 정치적・외교적인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한일 양국은 함께 국제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세계평화와 발전에 그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한일 양국의 창조적 우호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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